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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독일 뮌헨 다하우 강제수용소 방문기(1)
    후기(後記)/여행후기 2020. 5. 12.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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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가 등장한 이후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옛 자료를 보다보니 2010년에 독일 뮌헨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때 뮌헨에 있는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갔다 와서 글과 사진을 이글루스였나 어디였나 정리해두었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여기 블로그에 다시 정리해보려고 한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듯이, 독일 국내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건축물 구성과 운영 방식 등은 뒤에 만들어진 다른 강제수용소들의 원형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하우 수용소에 간 날은 독일 현지 시각으로 2010년 7월 7일이었다. 뮌헨 중앙역 주변 숙소에서 주선하는 가이드 투어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가이드 투어에 신청하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어렵게 느껴졌다. 교통이나 동선을 생각해보면 그냥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복잡해봤자 기차랑 지하철이겠지 라는 이상한 자신감으로, 낯선 뮌헨 철도 노선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꾸역꾸역 다하우까지 갔다.

     

     

    S-Bhan과 U-Bhan으로 나뉘어 있는 독일 열차 노선을 이해하지 못해서 꽤 오래 헤매긴 했지만, 사실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애매했다. 다하우는 뮌헨에서 S-Bhan으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뮌헨에서 가까워서인지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당시 탔던 S-Bhan 열차
    다하우 강제수용소행 버스를 타는 정류장
    북적북적

     

    다하우 역에서는 버스를 타고 강제수용소 입구까지 이동했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버스로 이동하면서 보았던 표지판들이었다. 강제수용소의 위치뿐만 아니라 빼곡하게 관련 설명을 적어둔 표지판들이 동네 이곳저곳에 있었다. 일반 주택 앞에도 떡 하니 표지판들이 있었는데,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기억하겠다는 독일의 의지가 느껴졌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입구 정류장 도착하면, 다하우 강제수용소 입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제일 먼저 보인다. 입구 바로 앞 안내소에서는 오디오가이드 장치들을 빌려주기도 하고, 강제수용소,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서적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안내소 건물은 수용소의 철창을 연상시키는데, 기분 탓인지 입구에서 처음 바라볼 때보다 다하우 수용소를 모두 둘러보고 나올 때 그 배치와 구성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것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2010년 당시에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없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입구 간판
    철창을 연상시키는 입구(나올 때 시점)

     

    안내소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강제수용소 입구’가 나온다. 이 입구의 문에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Arbeik Macht Frei", 번역하면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고 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입구에도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강제수용소가 어떤 기능을 했는지 알고 보면 소름끼치는 말이다. 당시 여기에 갇혔던 사람들이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는 감히 상상되지 않는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하리라"
    멀리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입구를 지나면, 아래 사진과 같이 넓은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길고 넓은 ㄷ자형 건물이 예전 강제수용소 본부(?)이다. 이곳은 지금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나는 기념관을 먼저 둘러본 뒤에 강제수용소 부지를 둘러보았다. (1)에서는 기념관을 위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정면에서 기념관 전체를 담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는데 실패했던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을 찍은 사진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그 반대쪽까지 와서 찍은 사진

     

    기념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장감이었다. 대부분의 판넬은 아래 사진들처럼 걸개 형태로 제작되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수감자들의 사진을 먼저 보고, 그다음 뒤로 돌아가서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왜 여기 왔는지, 이 수용소에서 어떻게 됐는지 등을 알게 된다. 기념관의 전체 형태가 사실상 일자형에 가까워서 한 방향으로 동선이 진행되지만, 각 방에서는 이 걸개를 둘러봐야 하므로 동선이 강제되지 않는다. 관람객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여기 수감됐던 사람들에 대해 직접 알아보기를 요구하는 전시 배치와 구성이었다. 이 사람들이 단지 패널 속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이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 방이 이런 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앞면에는 사람 사진이
    뒷면에는 이 사람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당시 강제수용소 본부에서 사용되었던 물건, 수감자들의 개인물건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바로 아래 사진의 책상은 강제수용소 본부에서 사용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강제수용소 운영 관련 서류들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사람 목숨이 달린 서류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관했을 이 책상을 지금 다시 보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그때도 아마 비슷한 생각에서 이 사진을 남긴 것 같다.

     

    바로 이 책상
    수감자들의 개인용물건들(신분증, 사진 등)
    당시 수감자의 옷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수감자 강제노동과 학살이 이루어졌고, 수감자들을 의학 실험에 이용하기도 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유태인뿐만 아니라 독일 정치범들을 비롯해 약 30개국에서 온 수감자 20~25만 명이 있었는데, 약 2~3만 명이 여기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학살 관련 전시 내용은 강제수용소 부지를 정리한 (2)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수감자를 의학 실험의 대상으로 했다는 내용

     

    생존자 인터뷰도 들어볼 수 있다. 당연히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사진과 영상으로 내용을 대충 짐작했다. 이 전시 방법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서 익숙했다. <제주4.3기념관>이 대표적이다.

     

    생존자의 증언을 전시

     

    곳곳에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을 형상화하거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미술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당시 수감자들의 모습을 형상화
    나치 문양을 형상화
    기념관 외곽에 위치한 NEVER AGAIN
    강제수용소가 존속한 기간, 1933~1945

     

    기념관에서 어떻게 '피해자'를 보여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가해자'를 보여줄 것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념관을 둘러 보면 물론 "나치 이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지만, 앞서 말했던 한나 아렌트의 책이나, 데틀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 등과 같은 책에서 말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가해자'였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깨달음도 느낄 수 있다. 기념관은 단순히 가해자 '나치 놈들’을 강조하기 보다 현장감을 높여서 관람객 당신이 이 사건을 잊는다면, 전시 걸개의 뒷면을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이 희생자들을 잊는다면, 이런 비극은 언제,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념관의 고민이 관람객인 나에게 느껴졌기에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곳이 기억에 남는다.

     

     

    다음 편에서 계속(2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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