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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독일 뮌헨 다하우 강제수용소 방문기(2)
    후기(後記)/여행후기 2020. 5. 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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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2010년 독일 뮌헨 다하우 수용소 방문기(1)에 이은 두 번째 글이다. 첫 번째 글부터 보려면 이 링크를 이용하면 된다.

     

    기념관 앞에 설치된 미술품. 고통이 느껴진다.

    1편에서 봤던 바로 위 미술품을 보다가 뒤돌면, 바로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강제수용소 부지가 엄청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까이서 찍은 생활관의 외부 모습
    생활관 터에서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나무 아래 남아 있는 건물이 수감자들을 수용한 생활관이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사진처럼 터만 남아 있다. 당시 모습을 재현해둔 생활관 2개 동만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관람객들은 주로 성인과 학생들인데, 태도가 각양각색이기는 했지만 튀는 행동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명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시종일관 진지했다. 설명하는 내용이 무거워서 그랬을 테지만, 생활관들이 대부분 철거되어 오히려 강제수용소 규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분위기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생활관을 대부분 철거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나는 "아마 관리가 힘들어서 2개 동만 남겼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말았었다. 지금 와서 거꾸로 생각해보면 강제수용소를 운영한 사람들은 단순히 사람을 가두고 죽이기 위해 그만큼 갖은 노력을 들였던 것이다. 지금처럼 역사학자, 기자, 학예사 등이 나치 독일의 학살을 나름대로 소화시켜서 보여줘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이 '꼼꼼하고 관리된' 학살 장면들을 처음에 직접 마주했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느낌이었을까.

     

    화장실
    2층으로 된 침상
    생활관 내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남아 있는 생활관 2개 동은 내부도 들어가볼 수 있다. 위 사진은 공간 내부에 재현되어 있는 화장실과 침상 모습이다. 강제수용소 운영 당시, 혹은 1945년 강제수용소 해방 때 실제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생활관을 살펴볼 수 있다. 

     

    ㄷ자형 건물의 모습을 담은 사진

     

    위 건물까지 와서 다시 기념관 쪽을 바라 본 사진이다. 기념관 건물 전체를 찍은 사진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다. 예전에는 생활관과 수감자로 가득 찼을 허허벌판을 지나 기념관 정면에 나있는 길 끝에 이르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앞에 있는 미술품과 비슷한 느낌
    전체 모습
    그 옆에 있는 건물 외부 모습
    내부 모습
    추모 공간에 있는 의자도 독특하다. 편히 쉬는 공간은 아니라는 메세지를 주는 듯도 하다.

     

    추모 공간을 지나 옆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지나면 끔찍한 공간이 나온다. 먼저 보이는 것은 수감자들의 시체를 처리했던 소각로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소각로이지 화장터가 아니다.

     

    소각로 외부 모습
    소각로 내부

    아래는 악명 높은 가스실의 모습이다. 매끈한 철문과 거대한 방을 상상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건물도 조그마하고 가스실을 폐쇄하는 철문도 그렇게 투박할 수 없었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갑갑함이 느껴질 정도로 어둡고 천장도 낮았다. 가스실 및 강제수용소 생활의 모습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불편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쥐>에 따르면, 가스가 분출되는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입구로 달린다. 그러나 철문은 당연히 열리지 않고 사람들은 문을 손으로 긁다가 손톱이 모두 부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입구부터 시체가 가득 쌓이게 되는데, 힘이 없거나 덩치가 작은 사람들은 시체더미 아래에 깔려 죽기도 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에도 입구부터 쌓인 시체더미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애초에 다하우 수용소를 찾아가 보려고 생각했던 것은 <쥐>때문이었는데, 직접 그 장소에서 작품을 떠올리니 그 생생한 묘사가 더욱 진하게 전해지는 듯 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가스실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분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
    금방 북적거리는 내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학살이 진행되면, 가해자 측에서 선택하는 시체 처리 방법은 매장이다. 학살은 어쩌면 군인 사이의 전투보다도 더 많은 사망자를 한 장소에 집중시키기 때문에, 그 시체들을 처리해야 한다면 방법이 많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전쟁 전후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예들이 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볼 수 있듯이 학살 후 시체를 소각 처리한다는 것은, 그만큼 꼼꼼하고 철저한 계획 살인이 지속해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학살들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치 독일의 학살 방식은 그 체계적인 모습 때문인지 느껴지는 참담함의 정도가 좀 다른 것 같다.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반성은 유럽이라는 지정학적, 경제적 배경 때문에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냉정한 분석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서로 붙어 있는 유럽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독일은 다시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하우 강제수용소처럼 자기 나라의 범죄를 보존하고, 전시하고, 후손들에게 그대로 교육하는 것은, 경제적 요인 하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요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가면 그 아래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논쟁, 갈등, 합의 과정이 깔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보자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규모가 커서 담장 바깥쪽에 위치한 부속 건물들도 있었지만 모든 공간을 다 가보지 못했다. 이날 오전에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2~3시간 둘러보고 다시 뮌헨으로 이동해, 모던 피나코테크, 노이어 피나코테크, 알테 피나코테크를 관람했다. 뮌헨 일정을 줄이는 대신, 하이델베르크와 뉘른베르크를 갈 수 있었지만 뮌헨 일정이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 또 근처를 방문하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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