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용 보고서
-
조선왕조실록의 출처표기에 대하여조선 사용 보고서 2022. 7. 17. 16:39
논문이나 보고서를 쓸 때는 주장과 분석의 근거로 이용한 자료의 출처를 표기하여야 한다. 인문학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각주로 출처를 표기한다. 자료의 출처를 밝히는 각주는 그저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해당 주장과 분석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글쓰기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각주와 관련해서는 앤서니 그래프턴의 책을 한번쯤 볼만하다(앤서니 그래프턴_각주의 역사_테오리아_2016).) 조선시대와 관련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이 가장 자주 출처표기를 하는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각 기사 출처표기 방식은 출판사, 학술지, 연구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 )실록』권( ), ( )년 ( )월 ( )일 (간지) 예)『세종실록』권45, 11년 8월 25일..
-
행정수도 이전과 <경국대전> 이야기_2조선 사용 보고서 2022. 7. 16. 01:00
저번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헌법재판소가 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결 근거로 이용하였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저번 글에서도 인용하였던 2004년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다시 검토해보자.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확인(전원재판부 2004헌마554, 2004.10.21.) (3)수도 서울의 관습헌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 (바)이러한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성종때에 완성된 조선의 기본법전이었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성부(漢城府)에 관한 규정은 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 한성부조(漢城府條)에 들어있는데 경관직은 지방관인 외관직(外官職)과 구별되어 있었고, 그 관할로 경도(京都), 즉 서울의 호적대장, 시장 등의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하여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하였다. 위 내용을 ..
-
행정수도 이전과 <경국대전> 이야기_1조선 사용 보고서 2022. 7. 15. 01:33
은 조선시대 핵심 법전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금은 당연히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사료일 뿐이다. 역사학과 관련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라는 낱말조차 생소할 수 있다. 은 조선시대를 전공하는 나에게는 어떤 텍스트보다 중요한 텍스트이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 영향력이 큰 텍스트는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이 이 한국에서 단 한 번 중요한 텍스트인 적이 있었다. 바로 2002년 행정수도 이전 논의였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이미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미 서울 인구의 과밀화는 사회 문제가 가운데 하나였다. 박정희 정부는 수도 기능을 나누고 옮겨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박정희 정부 이후에도 관련 논의는 이어졌지만, 행정수도 이전이 구체적으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하지..
-
대장부와 졸장부, 그리고 천장부의 어원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31. 03:17
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쓰는 기록을 보통 졸기(卒記)라고 부른다. 각 마다 졸기 수록 기준과 내용 구성에 차이가 있는데, 생략해서 간단하게 설명하면 꽤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이 죽었을 때 이 졸기가 에 기재된다고 보면 되겠다. 수많은 졸기 가운데 하나인 이사균(李思鈞, 1471~1536)의 졸기에 천장부(淺丈夫)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사균이 단점이 없는 사람은 아니나 적어도 천장부는 아니었고 대장부에 가까운 기질을 지녔다는 사관(史官)의 평가이다. 대장부나 졸장부(拙丈夫)는 현재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들어볼 수 있는 표현인데 천장부는 조금 생소하다. 졸기에서는 이 천장부를 대장부(大丈夫)의 반대말로 쓰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대장부의 반대말은 졸장부가 더 익숙하다. 도 대장부의 대표적인 반대말을 졸장부로..
-
<조선왕조실록> 상세검색 요령과 주의점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25. 02:02
여러 선학(先學)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이하 )은 위와 같이 현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료가 되었다. 1990년대 를 디지털 자료(CD-ROM)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된 뒤, 조선시대 역사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와 관련한 콘텐츠는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정확한 통계는 알아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웹서비스 이후에는 그 증가 폭이 더 급격해졌으리라 추정된다. 이제 누구나 조선시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어를 넣고 살펴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몇 번 검색을 해본 분들을 알겠지만 원하는 내용을 찾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딱 맞는 내용이 잘 나오지 않거나 너무 많은 내용이 검색되기도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요령과 주의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검색어를 넣었지만 원하는 정보가 나오지 않을 ..
-
세조와 신숙주의 팔씨름 이야기 출처는?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18. 18:59
세조(李瑈, 1417~1468, 재위 1455~1468), 신숙주(申叔舟, 1417~1475), 한명회(韓明澮, 1415~1487)의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팔씨름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왕이 된 세조, 신숙주, 한명회 등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세조와 신숙주가 팔씨름을 하게 되었다. 신숙주는 취한 나머지 세조의 팔을 크게 꺾고 말았는데, 세조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불쾌했다. 이것을 눈치챈 한명회는 신숙주에게 오늘만큼은 책을 읽지 말고 그대로 자라고 했다. 신숙주는 아무리 취하더라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숙주는 한명회 말에 따라 잠을 잤다. 과연 세조는 내관(內官..
-
고약한 고약해의 어원(3)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16. 13:37
드디어 마지막이다. 이전 글들을 링크로 걸어둔다. 고약한 고약해의 어원(1) 고약해 어느 날부터 갑자기 "고약하다"는 우리말이 조선시대 인물 고약해(高若海, 1377~1443)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온라인에 떠돌기 시작했다. 글자 형태를 보면 꽤 그럴듯하다. 고약해. 고약�� leesearches.tistory.com 고약한 고약해의 어원(2) 고약한 고약해의 어원(1) 위 링크로 제시한 첫 번째 글에서 고약해라는 사람을 고약하다, 고약해의 어원이라고 믿기 어려운 이유를 제시했다. 앞으로 추적할 내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약해� leesearches.tistory.com 첫 번째 글에서는 고약해라는 사람을 고약하다, 고약해의 어원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았다. 두 번째 글에서는 사료로 볼 때 ..
-
스승의 날은 왜 5월 15일일까?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8. 01:45
5월 7일이 생일인 친구가 있는 덕분에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보게 되었다. 아마 친구는 생일을 맞아 자기 생일 날짜인 5월 7일을 인터넷에 검색해봤나 보다. 검색 과정에서 친구는 조선 세종 생일이 양력으로 5월 7일이라는 정보를 발견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은 세종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왜 이런 정보가 인터넷 공간에 많이 남아 있을까? 먼저 세종 생일을 찾아보자. 사이트에 가서 총서를 찾으면 된다. 총서에는 세종이 태조 6년(1397) 4월 임진(壬辰)일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 이제 1397년 4월 임진일이 음력으로 며칠인지 찾아보자. 을 눌러서 태조 6년 4월로 가보자.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이 달은 계미(癸未)가 초하루인 달이다. 에는 6년 4월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