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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떼어 놓은 당상, 따 놓은 당상, 종합적으로 이해해보기
    조선 사용 보고서 2020. 4. 22.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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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Joseph Akbrud  on  Unsplash

     

     

    "떼어 놓은 당상" 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속담을 많이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떼어 놓은 당상"은 "따 놓은 당상"으로도 쓰며 "떼어 놓은 당상이 변하거나 다른 데로 갈 리 없다는 데서,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떼어 놓은 당상 좀먹으랴", "받아 놓은 당상"이 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떼어 놓은 당상"과 "따 놓은 당상"을 모두 쓸 수 있다고 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둘의 어감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떼다: 붙어 있거나 잇닿은 것을 떨어지게 하다.

    따다: 붙어 있는 것을 잡아떼다.

     

    사전적 의미는 거의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따다"가 "떼다"보다 적극적인 어감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번과 같이 "놓다"와 함께 쓰이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떼어 놓은 당상"이 "어떤 것에서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건조한 어감이라면, "따 놓은 당상"은 "어떤 것에서 '잡아'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당상을 소유하겠다는 의지가 개입된 어감으로 느껴진다. 전자는 당상을 떼서 땅에 놓는 느낌이고, 후자는 당상을 떼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 느낌이다. 왜 같은 의미의 속담에서 이렇게 두 가지 어감이 느껴질까.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뉴스 기사, 칼럼, 블로그, 국립국어원 Q&A 등을 살펴보니, 당상(堂上)을 무엇으로 보느냐가 속담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상은 두 가지로 인식되고 있다. 하나는 옥관자(玉貫子)라는, 옥으로 만든 장식품으로 보는 것이다. 당상을 옥관자로 이해하면, 해당 속담은 옥관자를 다른 곳에 떼어 두어도 상하거나 변할 일이 없다는 의미가 되며, "따 놓은 당상"보다는 "떼어 놓은 당상"이 조금 더 적절한 표현이 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두 표현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뜻풀이에서는 당상을 옥관자로 보는 설명에 가깝다. 다른 하나는 조선시대 특정 범위의 관직들을 아울러 의미하는 개념인 당상관(堂上官)으로 보는 것이다. 당상을 당상관으로 이해하면, 해당 속담은 당상 자리를 차지하여 맡아두었다, 혹은 이미 차지한 당상 자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며, "떼어 놓은 당상"보다는 "따 놓은 당상"이 보다 적합한 표현이 된다.

     

     

    아마도 처음 속담이 만들어졌을 때는 속담의 당상이 옥관자를 의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기문의 <속담사전(1962)>에서는 당상이 옥관자를 의미한다는 근거로 양재건의 <이담속찬습유(耳談續纂拾遺)>을 인용하고 있다. 이 <이담속찬습유>는 정약용의 <이담속찬(耳談續纂, 1820)>을 풀이한 것이다. <이담속찬습유>에는 "떼어 놓은 옥관자가 좀먹어서 혹 변할까(摘置玉貫蠧蝕或憚)"라는 속담이 기재되어 있고, 뜻풀이로 "나누더라도 고유한 것은 잃어버리는데 이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言 分所固有者 不致有失)"라고 써있다. "떼어 놓은 당상이 좀먹으랴"라는 비슷한 속담의 존재도 당상이 고유하고 귀중한 물건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옥관자가 사실상 당상관을 상징하는 장식품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옥관자는 당상관만 착용할 수 있는 장식품이었다. 그래서 옥관자가 당상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당상은 옥관자와 당상관을 모두 가리킬 수 있는 용어였다. 그러나 이 속담의 당상이 옥관자보다 당상관의 의미가 강했다면 굳이 물건의 어감을 강조하여 속담을 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직접 살았던 양재건과 정약용 두 사람이 옥관자의 상징성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속담의 시작은 이와 같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 이 속담을 듣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속담을 말하면서 옥관자뿐만 아니라 당상관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런데 만약 당상이 당상관으로 인식된다면, "떼어 놓은"이라는 표현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왜 어울리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당상관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소개하겠다.

     

     

    당상관은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당(堂)의 위에 있는 관원이다. 왕이 참여하는 공식 행사에서 관원들은 자신의 지위에 따라 차례대로 도열하게 되는데, 지위가 낮을수록 왕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높이의 격차도 커졌다. 당상관은 왕과 가장 가까운 관원이자, 조선의 관직 체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관원이었다. 이들은 품계로 보면 정3품 상계(上階) 이상이었다. 이와 같이 당상을 제일 위에 두고 당하(堂下), 참상(參上), 참하(參下)가 이어졌다. 무슨 판서니, 참판이니, 대사헌이니 하는, 사극에 매번 등장하는 관직을 맡은 관원들이 바로 당상관들이었다. 어디선가 이름 좀 들어보거나 본 적이 있는 관직에 있는 관원는 모두 당상관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당상관들이 모두 중요하고 유명한 관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상관은 일종의 지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지금으로 비유해보면 "사원", "대리", "부장" 등과 비슷한 개념이다. 한 회사에 수많은 "대리"가 있지만 직책과 업무는 각자 다르다. 그리고 각 부서에 "대리"가 있지만 부서가 다르다고 대우(봉급)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당상관은 굳이 비교하자면 "임원"급으로 당상관이 되면 모든 대우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며, 악랄한 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그 지위는 박탈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어떤 집안에서 당상관이 배출된다는 것은 그 집안의 큰 경사였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속담을 이해하는데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이렇게 지위가 높은 당상관 뿐만 아니라 모든 관원의 인사(人事)는 왕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당상관 자리는 획득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당상관 자리를 따로 떼서 마련해두는 것은 왕만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누군가 열심히 성과를 쌓아서 당상관 자리를 "따 놓을 수는" 있어도, 왕이 아닌 누군가 당상관 자리를 다른 사람을 위해 "떼어 놓을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당상을 당상관으로 보면, "떼어 놓은"보다 "따 놓은"이 더 어울리는 표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당상관이 착용하는 옥관자가 잘 변하지 않는 귀중품인 탓에 만들어진 속담이었지만, 옥관자가 곧 당상관을 떠올리게 하면서 속담의 표현도 조금씩 변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받아 놓은 당상"이라는 비슷한 속담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 놓은 당상"이 우리 일상 언어에 등장한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어감의 속담이 공존하게 된 원인은 옥관자의 상징성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덧붙여, 조선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따 놓은 당상 자리라고 말할 수 있는 관직들이 실제로 있었다. 이 관직에서 일정 조건을 채우면 당상관으로 승진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런 구체적인 규정까지 들먹이면서 속담을 썼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 해석은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그럴듯하지만 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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