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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승의 날은 왜 5월 15일일까?
    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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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Charles Deluvio  on  Unsplash

     

     

    5월 7일이 생일인 친구가 있는 덕분에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보게 되었다. 아마 친구는 생일을 맞아 자기 생일 날짜인 5월 7일을 인터넷에 검색해봤나 보다. 검색 과정에서 친구는 조선 세종 생일이 양력으로 5월 7일이라는 정보를 발견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은 세종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왜 이런 정보가 인터넷 공간에 많이 남아 있을까?

     

     

    먼저 세종 생일을 찾아보자.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가서 <세종실록> 총서를 찾으면 된다. 총서에는 세종이 태조 6년(1397) 4월 임진(壬辰)일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 이제 1397년 4월 임진일이 음력으로 며칠인지 찾아보자. <태조실록>을 눌러서 태조 6년 4월로 가보자.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이 달은 계미(癸未)가 초하루인 달이다. <태조실록>에는 6년 4월 임진일 기록이 없지만, 육십갑자로 볼 때 4월 신묘일 다음날이 임진일이 된다. 4월 신묘일은 태조 6년 4월의 아홉 번째 날, 다시 말해, 9일이다. 따라서 세종의 생일인 4월 임진일은 1397년 4월 10일이 된다.

     

     

    이 결과물을 들고 한국천문연구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음양력변환계산]을 해보자. 음력 1397년 4월 10일은 양력으로 변환하면 1397년 5월 15일이 아니라 1397년 5월 7일이 나온다. 이 차이는 양력의 종류인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의 계산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유럽에서 양력은 1582년까지 율리우스력이 사용되었고, 그 뒤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율리우스력을 개선한 그레고리력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음력 4월 10일은 율리우스력으로 계산하면 5월 7일, 그레고리력으로 계산하면 5월 15일이 된다.

     

     

    한국천문연구원이 2009년에 발간한 <조선시대 연력표>에서는 1582년 이전의 음양력변환은 율리우스력으로 계산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로 보면 선조 15년(1582) 9월 1일까지는 율리우스력, 10월 1일부터는 그레고리력으로 변환하여 계산하는 셈이다. 율리우스력이 그레고리력으로 바뀌면서 1582년 10월 4일 수요일 다음날이 10월 15일 목요일이 되었으므로 그 변화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음양력변환계산] 역시 율리우스력을 계산에 반영하여 음력 4월 10일을 5월 15일이 아니라 5월 7일로 변환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 성과가 왜 스승의 날 제정할 때는 반영되지 못했을까? 스승의 날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8년이었으나 이때는 5월 15일이 아니었다. 5월 15일이 스승의 날로 정해진 것은 1965년 4월의 일이다.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때 아마도 율리우스력을 고려하지 않고 그레고리력을 그대로 적용하여 스승의 날 날짜를 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582년 율리우스력을 그레고리력으로 바꿀 때 둘 사이의 오차는 10일 정도였다. 그런데 5월 7일과 5월 15일이 10일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율리우스력이 실제 1년보다 매년 약 0.0078125일(약 11분 15초) 뒤쳐지기 때문이다. 1582년보다 약 185년 전인 1397년에는 이 오차가 약 1.4453125일 정도 작은 상태였다. 이렇게 계산된 약 8.5일이 율리우스력 계산으로 나온 5월 7일과 그레고리력 계산으로 나온 15일 사이의 차이가 된다.

     

     

    이처럼 율리우스력 대신 그레고리력으로 세종의 양력 생일과 스승의 날을 정한 것을 두고, 다소 부주의했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부정확하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율리우스력으로 계산한 5월 7일을 썼더라도 그것이 정확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그러니까 세종의 정확한 양력 생일을 알아내려면, 조선시대 당시 역법(曆法)과 천문 현상을 분석하여 세종의 생일날 태양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다음 그 값을 율리우스력 등 당시 다른 달력들과 비교해보면서 보다 정밀한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 애초에 꼭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조선시대 기념일(?)은 오랫동안 근삿값에 머무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세종의 생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해서 생기는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화폐부터 기념일까지 왜 이렇게 조선시대 인물이 많이 쓰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한 몇 가지 추론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세종의 생일이 스승의 날로 정해진 배경에 박정희 정권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있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이 5월 15일로 정해진 1965년은 공교롭게도 한일협정이 맺어진 해였다. 이때를 전후로 민족주체성은 박정희 정권의 핵심 단어가 되었고 1970년대부터 세종과 이순신은 민족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추앙되기 시작했다. 1956년 만들어진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68년에 이르러 세종대왕기념관을 세우고 <세종실록> 번역본 첫 권을 내놓았다. 세종의 생일이 스승의 날로 정해진 것도 이러한 맥락과 크게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스승의 날 하면, 일반적으로 학교 선생님을 떠올리지, 세종을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종이 이렇게 '사용'된 것이 마뜩잖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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