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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곡 이이(李珥)의 십만양병설로 쓴 세상 제일 게으른 글쓰기
    조선 사용 보고서 2020. 4. 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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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발췌

     

     

    오늘 <중앙일보> 문화면에 <더, 오늘>이라는 연재물 가운데 하나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올라왔다. 다음 메인페이지에 올라왔길래 눌러보았다.

     

    [더오래]’십만 양병’ 반대한 류성룡, 임진왜란 터지자..

     

    <더, 오늘>이 대체 무슨 프로젝트인지 알 수 없어서 조금 더 검색해보니, <중앙일보>에서 만든 "인생 환승을 위한 커뮤니티"라고 한다. 아마도 정년 등 어떤 이유에서 직업이나 전문 분야를 바꾸는 사람들이 필진으로 선정되어 특정 주제의 글을 연재하는 곳인 것 같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대구한의대 교수 송의호이다. "온고지신 우리문화"라는 주제로,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사례별로 정리하여 연재한다고 한다.

     

     

    이미 나무위키 검색 결과를 글에 대놓고 인용하는 것부터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이런 글이 다음 메인페이지에 걸렸으니, 덮어놓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냥 욕하면 혹시 글을 쓴 사람이나 <중앙일보>가 굉장히 억울해할 수도 있으므로, 게으른 글쓴이와 매체가 얼마나 무용하고 위험한 것인지 간단히 보여주려고 한다.

     

     

    일단 글쓴이가 제시한 두 가지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자.

     

    1)조선은 임진왜란 전까지 태평성세였다.

    2)이이(李珥, 1536~1584)의 십만양병설은 임진왜란을 예상한 혜안이었다.

     

    글쓴이의 주장과 달리 조선에는 임진왜란 전까지 이렇다 할 전쟁이 꽤 있었다. 글쓴이가 몰랐을 뿐이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임진왜란(1592)이 있었던 선조대 바로 직전 명종대에 을묘왜변(1555)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전 중종대에는 삼포왜란(1510)이 있었다. 북쪽에서도 니탕개의 난(1583) 등이 있었고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200년"이나 이렇다 할 전쟁이 없었다니.

     

     

    이이를 언급하면 이른바 십만양병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십만양병설은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10만 명의 군사를 준비하자는 내용의 정책이다. 그러나 이미 1980년대부터 십만양병설은 후대에 만들어진 허구이거나, 혹은 완전히 허구는 아니지만 그 의도와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밝혀졌다. 앞서 설명한 '태평성세론'은 십만양병설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가져온 논리이며, 이이는 임진왜란을 특정하여 대비했다기보다 당시 군사 전반에 대한 개혁 방안과 니탕개 등 당대 실질적인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 등을 고민했다는 것이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이다(민덕기, <임진왜란용이 되어버린 율곡의 십만양병설>, 역사와담론65, 2013 참조).

     

     

    그렇다면 이 내용들을 내가 조선시대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내용들은 인문계, 이공계, 예체능계  등 학문 분야와 상관없이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20~30분 안에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글쓴이는 애초에 기존 연구를 참고할 생각이 없었거나, 그저 게을렀다는 말이다. 

     

     

    한 3만 번 정도 양보해서, 이 글의 글쓴이가 기존 연구를 봤지만 도저히 납득하지 못했고, 사실 관계보다 메시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글쓴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우리나라 상비군 숫자를 들먹이면서, 유비무환이 중요하다는 마무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글은 사실 관계 파악에도 게을렀고, 메시지도 엉망진창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분은 왜 시간을 들여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중앙일보>는 왜 이런 글을 지면을 할애해서 연재해주고 있는걸까. 우리는 왜 이런 글을 다음 메인페이지에서 봐야 할까.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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