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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 Years, 2019)>, 상상보다 더 두려운 미래
    후기(後記)/시청후기 2020. 4. 2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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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즈 앤 이어즈> 왓챠플레이에서 캡처

     

     

    *이 글에는 <이어즈 앤 이어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영국 BBC와 미국 HBO가 합작한 6부작 드라마이다(마지막화의 내용으로 볼 때 아마 시즌이 더 나올 것 같다). 다가올 미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서 만든 드라마인데, 50년, 100년 뒤가 아니라 당장 5년, 10년 뒤를 상상해서 만든 이야기라 몰입이 잘 되었다. 영국 입장에서는 브렉시트 이후의 세계를 그렸으니 더 와 닿을 것 같다. 전지구적인 상황을 다루는 드라마이므로 이야기 전개가 다소 산만해질 수 있었는데, 한 가족의 이야기로 초점을 맞춘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역사적인 주제 혹은 전지구적인 소재의 이야기를 한 가족으로 풀어내는 가족드라마들이 늘 그렇듯이,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도 한 가족에 유독 많은 다양성(인종, 성 정체성, 장애 여부, 직업 등)이 몰려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 그리는 미래를 간단하게 묘사하면 이렇다. 사람이 점차 기계, 인공지능에 더 가까워진다. '트랜스휴먼'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인간의 몸에 직접 기계를 이식하여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뇌를 전자화해서 지식과 영혼(?)을 컴퓨터에 영원히 저장할 수도 있다. 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줄기세포를 사용해서 오래된 부품을 갈아 끼우듯이 몸을 치유할 수도 있게 된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으로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대면 업무를 비롯해 기존 일자리들이 대부분 사라진다. 전세계적인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핵폭탄이 전쟁에서 사용된다. 환경 문제는 더 이상 인간이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악화된다. 북극의 얼음은 모두 녹고 몇 달 동안 비가 내리는 이상 기후가 계속 이어진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과 전쟁으로 영국 은행은 망하고, 이런 혼란 속에서 단순히 극좌나 극우라고 하기에 애매할 정도로 광대에 가까운 집단이 정치 권력을 잡는다. 대중은 점점 광대에 환호하고 광대를 지지한다. 그리고 여전히 영국과 유럽에는 전쟁과 가난을 피해 난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2019년에 만들어진 이 드라마도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해왔던, 두려워했던 미래의 모습은 거의 다 구현되었다고 본다. 배경이 영국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기술의 발전과 환경 파괴 문제는 전지구적인 문제이니 우리나라, 현재를 대입하고 상상하며 볼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날로그 세대가 경험하는 당황스러움이다. 이 드라마는 이것을 꽤나 잘 표현했다. '트랜스휴먼'이 되어 육체를 버리고 디지털 신호가 되어 클라우드에 저장되겠다는 딸과 대화하며 경악하는 부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고 접근성도 비교불가능할 정도로 높아졌지만, 그만큼 거짓 정보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그렇게 생산된 거짓 정보가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속이는 세상도 잘 묘사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일종의 광대 집단이 정치 권력을 잡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보다 당장 우리집 앞 쓰레기 수거가 잘 되는지 되지 않는지가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하며 등장한 비비언 룩은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정말 곧 우리 앞에 나타날 것 같은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비비안 룩 정도는 아니지만 이미 많이 등장하긴 했다.

     

     

    마지막화 내용이 그렇게 끝난 것으로 볼 때 새로운 시즌을 만들 계획인 것 같은데, 급하게 내용을 정리해버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특히 마지막화 할머니 뮤리얼의 나레이션에 가까운 일장연설은 흥미로운 내용이기는 했지만, 이것을 굳이 드라마 내용으로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대사로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라떼는 말이야"만 하다가 갑자기 현자가 된 할머니의 모습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제작진이 "우리는 이 드라마를 이런 문제의식에서 만들었으니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어"라고 시청자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 같아서 의아했다.

     

     

    사람들이 멍청해지고 불행해지는 과정은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왔으면서,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과정은 너무 쉽게 묘사한 것도 아쉬웠다. 광대들이 정치 권력을 잡고 새로운 형태의 '수용소'까지 만들고 운영할 정도면, 이미 상당한 지지자들이 있다는 말인데, 가족들의 단합된 힘 단 한 번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 내가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나라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드라마가 통제와 선동의 무서운 힘을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게 묘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두환의 끔찍한 발언이 잠깐 떠올랐다("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아마도 지금처럼 기술이 발전한 상태에서 국가라는 조직이 마음만 먹는다면 사회를 통제하는 힘은 우리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사례로 이 힘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난민에 대한 시각도 애매하다는 느낌이 든다. 영국과 유럽의 입장에서 불쌍한 난민을 '받아준다는' 시혜적인 입장이 드라마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난민이 드라마에서 하나의 소재에 불과한데 굳이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대니얼의 애인인 난민 출신 빅토르를 구하는 것이 드라마의 핵심 소재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유럽-난민의 구도는 구원자-구원받는 사람 정도로 단순하게 묘사되고 있다. 빅토르가 난민이 된 이유인 자국의 혁명은 영국, 유럽과 전혀 관계 없는 일로 보여지고, 당사자인 빅토르도 딱히 영국과 유럽 난민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유럽 난민의 문제가 대부분 유럽의 제국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에서 봤을 때, 그리고 지금 전지국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은 개인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책임이 있다는 드라마의 주제로 볼 때, 핵심 소재 가운데 하나인 난민 문제를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전개라면 굳이 빅토르가 난민이라는 설정이 필요한가 싶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는 이전과 같은 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드라마의 상상보다 더 두려운 미래가 올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실제 세상은 시즌제로 쉴 수도 없고, 인류애나 시민 의식같은 것만으로 뚝딱 해결될 일도 없을 것이며,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서 개인 한 명 한 명에게 더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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