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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를 위해 팀이 있는 것이 아냐. 팀을 위해 네가 있는거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2020)>
    후기(後記)/시청후기 2020. 6. 1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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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재, 김유택이 있었던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농구보다 김기태, 조규제, 박경완이 있었던 쌍방울과 야구를 더 좋아했던 어린 시절에도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하 조던)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때도 조던이 위대한 농구선수인 것은 알고 있었다. 조던이 항상 TV 뉴스와 신문의 스포츠면을 화려하게 장식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삼성전자 알라딘보이 NBA게임시리즈에서 능력치가 가장 좋은 선수였기 때문이다(*알라딘보이가 삼성전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메가드라이브의 한국판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 알았다).

     

     

    야구보다 농구를 더 좋아하게 되고 한창 농구를 했을 때는 조던의 다음 시대인 2000년대였다. 나에게는 조던보다 리차드 해밀턴,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빈스 카터, 덕 노비츠키 등이 더 익숙했다. 동네와 학교 농구장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움직임을 따라 해보려고 했던 기억, 00-01 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LA 레이커스의 NBA 결승전 1차전을 비디오에 녹화해서 돌려보던 기억, 군대에서 농구를 좋아하는 선임과 한참 NBA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기억들은 모두 조던이라는 문화 아이콘을 동반한 NBA 시장이 전세계로 급격하게 확대된 덕분인 것 같다. NBA를 몰라도 심지어 농구라는 스포츠를 몰라도 조던은 알고 있었던 시대, 그 시대의 시작은 어떠했을까.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2020)>는 시카고 불스의 NBA 우승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조던이 있을 때 시카고 불스는 여섯 번 우승했다. 조던은 여섯 번 우승할 때 모두 결승전 MVP였다. 그리고 이 여섯 번의 우승은 두 번의 3연속 우승이었고, 시카고 불스는 결승전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이 어마어마한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 우승 과정은 NBA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아마도 제작진이 시간 순서에 따라 우승 과정을 쭉 따라가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면, 오로지 NBA 팬들을 위한, 굉장히 지루한 장편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은 비공개영상도 상당한 분량이었고 많은 관계자들 인터뷰도 새로 따냈으니, 제작진은 이걸 믿고 충분히 그런 선택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제작진은 그렇게 게으르지 않았다. 

     

     

    “다른 시간, 같은 업적"

    제작진은 시간 순서대로 다큐멘터리를 단순하게 구성하지 않았다. 1차 3연속 우승과 2차 3연속 우승 시기를 나눈 다음에, 그 두 시기를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 1차 3연속 우승과 2차 3연속 우승이 어떤 점이 비슷했고 어떤 점이 달랐는지, 그것이 조던과 동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폈다. 1차 3연속 우승할 때 조던과 시카고 불스가 바닥에서 정점으로 날아오르는 느낌이라면, 2차 3연속 우승할 때 조던과 시카고 불스는 피투성이가 되어 정상을 지키는 느낌이라 사뭇 다르다. 이렇게 나누어진 두 시기는 마지막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한 결승전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 구성은 이렇게 글로 보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보면 “왜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과거로 가서 그것을 설명해주고, “그때는 어땠지?”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그 시점으로 넘어가서 그것을 설명해주는, 대단히 친절한 구성이다.

     

     

    “같은 시간, 다른 기억"

    제작진은 조던에게 꼭 우호적인 인터뷰만 싣지 않았다. 유명한 갈등 사례인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올림픽 대표 탈락 사건도 양쪽의 입장을 모두 다루었다. 이렇게 서로 기억이 충돌하는 인터뷰가 다큐멘터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넷플릭스에서 총 10화의 다큐멘터리를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사이에 조던의 인터뷰 내용을 반박하는 증거가 언론에 나오기도 했다. 또 “당시 조던을 막을 수 있었다”던가, “당시 조던이 지쳐 보였다”던가 하는 인터뷰를 조던에게 보여주면서 승부욕이 강한 조던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도 승부와 관련된 일이라면 절대 상대의 기억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조던을 보고 있으면 조던이 어떤 사람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너를 위해 팀이 있는 것이 아냐. 팀을 위해 네가 있는거다"

    제작진은 조던 개인이 아니라 ‘팀(team)’에 집중했다. 다큐멘터리 초반은 조던이 NBA에 데뷔해서 첫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다루기 때문에, 마치 조던 한 사람을 위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동료인 스카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필 잭슨, 스티브 커, 시카고 불스 구단주, 단장 및 프런트 등도 각각 1화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작지 않다. 게다가 조던과 동료들은 거의 매 화 인터뷰에서 ‘팀’을 강조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조던이 한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거의 신격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조던 역시 동료와 가족에게 의지했던 팀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계속 강조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제목도 "마이클 조던”이나 “에어 조던"이 아니라,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라는, 팀의 의미를 굉장히 부각하는 단어가 선택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니 번역 제목에 마이클 조던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이 이해가 되면서도 아쉬웠다.

     

    팀 하면 생각나는 사나이, 조재중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는 농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챙겨볼 만한 좋은 다큐멘터리이다. 제작진은 위에서 설명한 다큐멘터리의 구성과 방향 설정으로, 절대적인 일인자 조던 때문에 가려져 있던 것들을 조명해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팀 안에서 서로 목표 달성 방법이 달라 티격태격 갈등이 생기는 모습, 결국 목표에 도달했을 때 나타나는 업적과 드러나는 아쉬움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들은 꼭 프로스포츠에만 있는 것들은 아니기에 흥미롭고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잘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고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총 10화의 장편 다큐멘터리인 데다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좋아서 길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다큐멘터리의 내용보다도 형식에 초점을 맞춰 후기가 작성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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