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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동요(童謠)라고 할 수 없다" 조선 태종대 동요 소동 사건하루실록 2020. 5. 3. 23:35반응형
Photo by Dave Weatherall on Unsplash 조선 태종 13년(1413) 혜정교(惠政橋))에서 열 살짜리 아이들이 놀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당시 사법기관인 형조(刑曹)에 잡혀왔다. 혜정교는 당시 한성 서린방(瑞麟坊) 북쪽에 있었던 다리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서울 경복궁의 정남쪽에 있었던 것 같다. <서울지명사전>에서는 혜정교를 현재 종로 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으로 위치를 비정하고 있다.
대체 이 혜정교에서 무슨 노래를 불렀길래 열 살짜리 아이들이 감옥으로 끌려왔을까. 곽금(郭金), 막금(莫金), 막승(莫升), 덕중(德中) 등 네 명은 공 여러 개를 치는 놀이를 하면서 공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그 공은 총 네 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름은 각각 현재 왕을 뜻하는 주상(主上), 효령군(孝寧君), 충녕군(忠寧君), 반인(伴人)이었다. 공에 당대 왕과 왕자들의 이름을 붙여서 가지고 논 셈이다. 반인은 시종을 드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네 아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이 혜정교 아래 물에 빠지자 "효령군이 물에 빠졌다"고 이야기하며 놀았다. 경복궁을 마주한 종로 한복판에서 왕과 왕자들을 가지고 논 것이었으니, 쉽게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본 효령군의 유모가 효령군의 장인인 사헌부 대사헌 정억(鄭易)에게 이 상황을 전달했다. 이 네 아이는 바로 감옥으로 끌려갔고, 조사 결과 곽금이 이 놀이와 동요를 만들어서 논 지 3일째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태종은 이것이 요언(妖言),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누군가가 일부러 아이들에게 놀이와 노래를 퍼뜨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물론 태종은 이것을 당시 아이들의 일반적인 놀이나 동요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잡혀온 사람이 열 살에 불과한 아이들이므로 모두 용서해주었다. 대신 이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불태우고 다시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했다. 아마도 문서를 불태우지 않았다면, 더 자세한 내용, 특히 곽금 등이 놀이를 하면서 부른 노랫말이 기록에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말은 "효령군이 물에 빠졌다"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내용이, 태종이 문서를 불태우라고 지시했던 사건이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에 굳이 기재되었다는 사실이다. <실록>은 철저히 편집된 자료로, 편집자들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자료이다. 의도 없이 단순하게 나열된 기사는 <실록>에 없다고 봐도 된다(다만 그 편집을 여러 명이 하기 때문에 <실록>이 하나의 방향으로 일관되게 쓰여지진 않는다). 대체 이 사건은 왜, 무슨 의도로 <실록>에 기재되었을까.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 태종 13년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한 가지 가능한 추론이 있다. 이때는 당시 세자(훗날 양녕대군(讓寧大君))가 태종의 신임을 점차 잃어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이틀 전에 태종은 세자가 마음대로 매를 날려 사냥을 한 것을 크게 질책했다. 이런 세자의 행동은 상습적인 것이었고, 태종은 이런 세자의 행동과 태도를 영 마뜩잖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공 이름"에 양녕, 세자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왜 왕과 왕자의 이름을 가지고 노는데 하필 세자만 빠졌을까. 이 놀이와 동요가 혹시 세자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었을까.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네 아이가 공에 붙인 주상(主上)이 태종이 아니라 세자를 가리켰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보면 열 살짜리들의 놀이에 대한 유모, 대사헌, 형조, 태종의 예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태종실록>은 예외적인 방향으로 작성된 기사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양녕대군의 폐세자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 기사 역시 양녕대군의 폐세자가 정당한 논리와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로 편집된 것이라면, 아이들의 놀이와 동요는 세자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추론이 크게 틀리지 않다면 편집자들이 의도한 이 기사의 의미는, "이렇게 세자가 형편없이 행동하니 소문이 나서 애들마저 이런 노래를 부르지 쯧쯧"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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