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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놀 순 있어도, 권력은 함께 할 수 없다.하루실록 2020. 5. 10. 00:12반응형
조선 태종 이방원(李芳遠,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왕위에 오른 뒤에도 사람을 많이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태종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연이어 제작되면서, '킬(Kill)방원'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만큼 태종은 권력에 대단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태종은 왕위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앞으로 왕의 권력에 문제가 될 것 같은 사람도 미리 처단했다. 권력 앞에서는 피붙이도 없었다.
최고의 이방원은 아직 유동근이다. <용의 눈물>에서 발췌(이하 같음). 태종에게 죽은 사람 가운데 민무질(閔無疾, ~1410), 민무구(閔無咎, ?~1410) 형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태종의 아내, 원경왕후(元敬王后, 1365~1420)의 동생들이었다. 태종에게는 처가 식구들이었다. 태종 10년(1410) 민무질과 민무구는 어린 세자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죽게 된다. 6년 뒤에는 민무휼(閔無恤, ?~1416), 민무회(閔無悔, ?~1416)까지 비슷한 죄목으로 죽게 된다. 사실상 자기 아내 가문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인 셈이다. 이런 전개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원경왕후와 민무질 형제의 아버지, 민제(閔霽, 1339~1408)였다.
조선 초기를 다룬 최고의 사극은 아직 <용의 눈물>이다. <태종실록>에는 이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가 있다(기사 링크). 태종 6년(1406) 태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민제의 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함께 놀면서 둘 다 거나하게 취했던 것 같다. 술자리에서 민제는 이미 왕이 된 태종을 두고 예전처럼 선달(先達)이라고 불렀고, 태종도 민제를 사부(師傅)라고 불렀다. 조정(朝廷)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야말로 이 날만큼은 계급장을 떼고 놀았던 것이다.
아들을 그렇게 지키려고 했건만. 밤이 깊어 취한 태종이 궁궐로 돌아가려고 민제의 집에서 나왔다. 민제는 대문 밖까지 나와서 태종이 말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기분이 좋았던 태종은 민제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했고, 민제는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말 앞까지 나왔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랑이, 서로 먼저 들어가라는 둥, 내가 계산한다는 둥, 이런 실랑이가 둘 사이에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민무질이 나서서 아버지가 먼저 들어가셔야 전하께서도 말에 오르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제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汝何知)"고 호통치면서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태종이 열 걸음 정도 걸어 나와서 말에 오르는 것으로 이 실랑이는 마무리되었다.
이 이야기로 볼 때 민제는 태종을 너무나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민제는 태종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권력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 왕 자신을 조금이라도 쉽게 생각하거나 권력욕을 드러낸다면 피붙이든 뭐든 가차 없이 정리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민제는 왕의 장인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시종일관 태종에게 납작 엎드렸다. 태종의 아들인 세종조차 태종이 죽을 때까지 태종에게 납작 엎드렸다. 세종이 왕위에 올라서도 상왕이 된 태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장면들을 보면 애처로울 지경이다. 친아들도 그럴 정도였으니 장인과 처가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민제가 태종 앞에서 민무질을 호통친 것도 아들을 보호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민무질 형제는 이전부터 몇 차례나 태종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민제가 무마해주고 있었다.
민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제가 죽은 뒤 민무질 형제는 계속 함부로 행동하다가 결국 태종에게 죽고 말았다. 이미 민무질 형제가 어떻게 죽는지 알고 있었던 <실록>의 편집자는 이 기사, 이 이야기 하나로 민제, 태종, 민무질 형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서로 어떤 관계였는지 단번에 드러냈다. 함께 놀 땐 놀더라도 선을 지켰던 민제,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행동했던 아들들, 그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던 태종, 권력은 정말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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