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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부와 졸장부, 그리고 천장부의 어원
    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3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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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Joshua Earle on Unsplash

     

    <실록>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쓰는 기록을 보통 졸기(卒記)라고 부른다. 각 <실록>마다 졸기 수록 기준과 내용 구성에 차이가 있는데, 생략해서 간단하게 설명하면 꽤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이 죽었을 때 이 졸기가 <실록>에 기재된다고 보면 되겠다. 수많은 졸기 가운데 하나인 이사균(李思鈞, 1471~1536)의 졸기에 천장부(淺丈夫)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사균이 단점이 없는 사람은 아니나 적어도 천장부는 아니었고 대장부에 가까운 기질을 지녔다는 사관(史官)의 평가이다. 대장부나 졸장부(拙丈夫)는 현재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들어볼 수 있는 표현인데 천장부는 조금 생소하다. 졸기에서는 이 천장부를 대장부(大丈夫)의 반대말로 쓰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대장부의 반대말은 졸장부가 더 익숙하다. <표준국어대사전>도 대장부의 대표적인 반대말을 졸장부로 정리해두었다. 졸장부와 비슷한 표현으로 소장부(小丈夫), 졸부(拙夫)가 있다. 요즘 신문들을 대략 검색해봐도 ‘대장부-졸장부’는 어느 정도 정착된 표현인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각 단어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대장부: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

    졸장부: 도량이 좁고 졸렬한 사내.

    천장부: 말과 행동의 품격이 낮고 야비한 남자.

     

     

    대장부, 졸장부, 그리고 조금 생소한 천장부는 어디서 시작된 단어일까? 대장부와 천장부의 기원은 <맹자(孟子)>에 있다. 먼저 대장부는 <맹자>의 등문공(滕文公) 하(下) 편에 나온다.

     

     

    천하의 넓은 집에 머무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大道)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그것을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道)를 행하니, 부귀(富貴)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고, 빈천(貧賤)이 그 절개를 바꾸지 못하며, 위세나 무력이 그 지조를 꺾을 수 없을 때, 이를 가리켜 대장부라 한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 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다음으로 천장부는 <맹자> 공손추(公孫丑) 하(下) 편에 나온다.

     

     

    옛날 시장에서는 자기가 가진 물건을 자기에게 없는 물건과 바꾸고, 시장을 담당하는 관리는 분쟁을 조정하는 일만 해도 되었다. 그런데 어떤 천장부가 농단을 위해 (언덕에) 올라 좌우를 살피며 시장의 이익을 독점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래서 세금을 부과하게 되었다. 상인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된 것은 이 천장부에서 시작되었다.

    (古之爲市者 以其所有 易其所無者 有司者治之耳 有賤丈夫焉 必求龍斷而登之 以左右望而罔市利 人皆以爲賤 故從而征之 征商 自此賤丈夫始矣)

     

     

    대장부가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이라면, 천장부는 남이 어떻게 되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쯤으로 볼 수 있다. 대장부와 천장부에 대해 더 많은 해석이 가능하나 일단 넘어가자. 대장부와 천장부는 각각 <맹자>의 다른 부분에 나오지만 반대되는 단어로 이해되었다. 천장부와 달리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졸장부는 기원을 찾기 어려웠다. 졸장부는 고전(古典)에서 비롯된 단어가 아니라 천장부에서 파생된 단어로 보인다. 예전 기록들을 검색해볼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고전종합DB>같은 곳에서 졸장부의 용례를 찾아보면, 졸장부의 용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장부의 용례가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는 아마도 '대장부-천장부’가 기본적인 단어 구성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천(淺)장부보다 천(賤)장부의 용례가 더 많은데, 천(淺)과 천(賤)은 비슷한 한자로 혼용한 것 같다.

     

     

    언어는 늘 변하는 것이므로 왜 지금 와서 ‘대장부-천장부’가 아니라 ‘대장부-졸장부’로 굳어졌는지는 다른 단어의 어원들처럼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다만 역시 늘 그렇듯이 몇 가지 근거로 상상과 추론은 가능하다.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졸(拙)의 범용성이다. '졸(拙)'은 ‘졸렬(拙劣)하다’와 같이 지극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자신의 글이나 책을 가리키는 졸고(拙稿), 편지글에서 아내에게 자신을 가리키는 졸부 등이 있다. 천(賤)도 천부(賤夫)와 같이 겸손의 의미로 쓰기도 하지만, 졸고나 졸부와 비교하면 용례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시대 글 대부분은 사대부 계층이 남긴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기를 가리킬 때 신분적인 의미도 있는 천(賤)을 자주 사용했을 것 같지 않다. 가끔 자기 겸손의 표현으로도 쓸 수 있으니, 천(賤)보다는 졸(拙)이나 소(小)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천(淺)을 쓰더라도 사람이 얕고 경박하다는 의미는 도저히 자기 겸손의 표현으로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천장부도 졸장부보다 의미가 강하다. 졸장부는 도량이 좁고 졸렬할 뿐인데, 천장부는 품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야비하기까지 하다.

     

     

    다음으로 '졸'의 발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자의 의미를 빼고 보면, 대장부나 장부(丈夫)는 대장, 장군, 장수를 연상시키는데, 졸은 장군 아래에 있는 '졸(卒)'을 연상시킨다. 단순하게 대장부의 반대말이라는 점에서 보면, 천장부보다 졸장부나 소장부가 더 인상적이다. 졸장부는 발음에서, 소장부는 간단한 한자의 의미에서 그렇다. '대장부-천장부'를 이해하려면 <맹자>를 비롯한 한자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야 하는데, '대장-졸'은 그것과 상관없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러니까 한자 문화에서 멀어질수록, '대장부-천장부'보다는 '대장부-졸장부'가 널리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일제시대를 전후로 '대장부-졸장부'가 '대장부-천장부'보다 우리 일상 언어에 가깝게 정착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졸'의 범용성과 직관성이 우리에게 '대장부-졸장부'를 익숙하게 한 것이라고 의심, 상상해보았다. 덧붙여, 요즘 굳이 천장부라는 말을 쓴다면, 천(賤)장부보다는 천(淺)장부가 대장부의 반대말로 적합한 것 같다. 천(賤)장부는 신분을 떠올리게 해서 그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느낌이다. 법적인 신분이 사라진 지금 들으면 딱히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천(淺)장부는 인간으로서 대단히 얕은 사람, 그 사람의 본질과 태도를 지적하는 느낌이다. 물론 실제 일상에서는 이미 "사내 대장부가 말이야 어쩌고", "그 친구 졸장부야 어쩌고"와 같이 뭔가 꼰대적인(?) 단어가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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