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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실록의 출처표기에 대하여
    조선 사용 보고서 2022. 7. 1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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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이나 보고서를 쓸 때는 주장과 분석의 근거로 이용한 자료의 출처를 표기하여야 한다. 인문학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각주로 출처를 표기한다. 자료의 출처를 밝히는 각주는 그저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해당 주장과 분석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글쓰기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각주와 관련해서는 앤서니 그래프턴의 책을 한번쯤 볼만하다(앤서니 그래프턴_각주의 역사_테오리아_2016).)

     

    조선시대와 관련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이 가장 자주 출처표기를 하는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각 기사 출처표기 방식은 출판사, 학술지, 연구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  )실록』권(  ), (  )년 (  )월 (  )일 (간지)

    예)『세종실록』권45, 11년 8월 25일 기해. 

     

    위 내용이 어떤 문장의 주석으로 달려 있다면, 그 문장은 <세종실록>에 있는 11년 8월 25일 기사를 참고하였다는 의미이다. 이것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출처를 표기하는 방법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원본이나 영인본 기준으로 해당 기사의 위치를 쓰거나, 기사의 첫머리를 함께 쓰는 방법이다.

     

    1) 『세종실록』권45, 11년 8월 25일 기해 3책 196면.
    2) 『세종실록』권45, 11년 8월 25일 기해 ○左司諫柳孟聞等上疏曰.

     

    1)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작업한 조선왕조실록 영인본을 기준으로 해당 기사가 어디에 있는지 표시하였다. 2)는 해당 기사가 8월 25일 기사 가운데 어떤 기사인지 기사 첫머리를 써서 표시하였다. 이처럼 같은 자료에 대한 출처표기 방법이 하나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는 현재 조선왕조실록 출처표기에 대한 학계의 합의가 편의성과 원본성 그 사이 어디쯤에서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조선왕조실록 출처표기를 넘어서 각주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확장할 수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조선왕조실록에 국한해서 살펴보겠다.

     

    조선왕조실록 원본은 활자로 된 책이다. 한 날짜에 적게는 1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의 기사를 싣고 있다. 같은 날짜의 기사는 각각 '○'로 구분될 뿐 기사를 독립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번호나 이름이 따로 없다. 기사의 고유 식별번호(이른바 ID)가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원본에는 간지만 있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날짜조차 없다. 가장 처음 보여준 예처럼 날짜와 간지만 표시하면 출처표기는 간단해지지만 출처를 찾아보려는 독자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날짜에 10개, 20개가 넘는 기사가 있으면 어떤 기사를 저자가 참고한 것인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찾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이나 2)와 같이 출처표기가 다소 복잡해지더라도 더 많은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빨간색 부분이 8월 25일 기사들이 시작하는 부분이다. 날짜가 없고 간지만으로 날짜를 표기하고 있다. 날짜는 후대에 연구자들이 따로 계산하여 붙인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이다. 같은 날에 날짜를 매겨놓고 기사들을 목록으로 정리해두었다. 날짜가 있는 것만으로도 훨씬 가독성이 높아진다.

     

    1990년대 조선왕조실록이 CD-ROM에 이식되고 나아가 온라인에 디지털 자료로 서비스되기 이전까지, 연구자들은 조선왕조실록 영인본을 직접 보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래서 1)과 같은 방식이 효과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 디지털 자료로 변환된 뒤에는 굳이 영인본을 찾아보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으므로 2)와 같은 방식이 편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이용하는 방식 변화에 맞추어 편의성에 따라 출처표기도 바뀌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1990년대 이전 연구 가운데 영인본 기준 '3책 196면' 혹은 태백산사고본 원본 기준 '14책 45권 16장 B면'과 같이 출처표기를 한 경우, 1990년대 이후 독자들이 출처를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현재 자료를 활용하고 있는 방식에 맞추어 편의성만 고려해 출처표기 형식과 내용을 고칠 경우 오히려 출처표기의 편의성은 물론이고 원본성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실 한 날짜에 10개, 20개 기사가 몰려 있는 경우는 많지 않고 또 관련 내용을 직접 검색도 할 수 있으므로, 첫 예시처럼 날짜와 간지만 표기하거나 2)처럼 그보다 조금 자세하게 표기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마치 책에서 디지털 정보로 변환되었던 것처럼 훗날 조선왕조실록을 이용하는 매체나 방식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처표기의 대원칙은 무엇보다도 그 자료의 원본성을 반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선왕조실록의 출처표기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의 판본에 대한 정보가 반영되지 못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이후 총 다섯 부가 제작되었다. 춘추관사고본, 정족산사고본, 태백산사고본, 오대산사고본, 적상산사고본이 그것이다. 현재 한국에 정족산사고본, 태백산사고본, 오대산사고본이 있다. 온라인에서 제공되고 있는 판본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 작업을 한 태백산사고본이다. 정족산사고본과 태백산사고본은 전질이 남아 있고, 이 가운데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족산사고본이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판본으로 알려져 있다. 1부는 적상산사고본으로 북한에 남아 있다. 나머지 1부는 춘추관사고본으로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판본끼리 내용 차이가 크지 않지만 특정 글자를 비롯한 몇몇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따로 언급이 없으면 태백산사고본을 기준으로 한다고 서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현재 정족산사고본 등 다른 판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논문이나 책에 의식적으로 판본에 대한 내용을 밝혀줄 필요가 있다. 일단 나부터 그래야 하겠다.

     

    둘째,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것이 반영되지 못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 표지를 보면, '조선왕조실록'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당대 사람들이 실록을 '조선왕조실록'이라고 불렀을 리도 없다. 그래서 실록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실록들을 모두 아우르는 명칭을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실록', 혹은 '조선실록'으로 쓴다. 개별 실록들도 마찬가지다. 앞선 예시들처럼 각 실록 표지에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세종실록의 경우 정식명칭은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이다. 하지만 명칭이 너무 길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후대 사람들이 줄여서 쓰고 있다. 이 과정이 지금 출처표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사소해보이는 부분일지 몰라도 학술적인 영역에서는 자료의 원본성을 따지는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현재 쓰고 있는 방법은 이렇다. 가장 처음 <세종실록>을 인용할 때는 다음 예시처럼 세종장헌대왕실록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이하' 표시로 <세종실록>이라고 줄여서 쓴다. 그 다음 2)처럼 날짜와 기사 첫머리를 써준다. 마지막으로 참고문헌이나 첫번째 각주에서 실록 판본에 대한 정보를 쓴다. (최근 논문에서는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世宗莊憲大王實錄(이하 세종실록)』권45, 11년 8월 25일 기해 ○左司諫柳孟聞等上疏曰.

     

    이 방법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재 내 입장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두 가지 문제 이외에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더 있을 것이다. (날짜 표기마저도 자료의 원본성을 해친다고 볼 수 있다. 원본에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완벽한 출처표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가장 효과적이고 엄밀한 출처표기 방식을 찾는 것이 연구자들의 의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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