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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1화)>
    후기(後記)/시청후기 2021. 4. 1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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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의 1화는 이성계와 정도전이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하지만, 이것은 조금 훗날의 일이다. 1화는 대부분 성균관에서 일하고 있던 정도전이 공민왕의 무리한 공사와 사치를 목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공민왕과 나라 꼴을 참지 못한 정도전은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리려고 하지만 이인임에게 방해받게 된다. 정도전은 명 사신들이 성균관을 방문할 때 드디어 공민왕과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조금 오글거리는 장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난한 시작이었다.

     

     

    이인임

     

    배우 박영규가 연기한 이인임은 이성계와 더불어 <정도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제목이 <정도전>이기는 하지만 초반에 등장하는 주인공 정도전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이다. 아마도 나중을 위한 '빌드업'으로 보이는데, 초반부 정도전은 그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도, 특이한 캐릭터도 아니다. 오히려 초반부 정도전의 행동은 너무 쉽게 예상이 가능해서 몰입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정도전은 자기 행동을 조리있게 설명하고 일정한 방향성으로 움직이기보단 열등감이나 순진한 정의 타령으로 일관하고 있다.

     

    배우 오지명씨가 같이 출연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정도전과 달리 이인임은 경험 많은 완숙한 정치가로서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이 계속 나온다. 첫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도적떼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 도성에서 거지들을 밖으로 쫓아내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이인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쫓아내지만 않으면 도적떼가 될 리도 없습니다. 만두 한 쪽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만두 접시를 노리지 않으니까요."

     

     

    2화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하륜이 정도전을 궁지로 모는 이인임에게 그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도 한다.

     

     

    "정치하는 사람에겐 딱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에요. 하나는 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구. 잘 봐두게. 삼봉이라는 도구로 어떻게 정적(政敵)을 없애나가는지."

     

     

    이인임은 이 두 장면만 보더라도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이 아직 좌충우돌하며 억지를 부리는 데 그치고 있을 때, 이미 이인임은 자기 행동의 의미를 하나하나 아주 잘 알고 있고 확실한 의도에 따라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 덕분에 이인임의 행동은 개연성이 있다고 느껴지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인임이 쉽게 상대할 수 없는 큰 적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악역 캐릭터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참고하여 윤곽을 만들어낸 것이지만, 배우의 연기와 존댓말로 짜인 대사가 그것을 완성한 것 같다.

     

     

    이조년의 시조

     

    작중 공민왕이 읊는 시조는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다정가(多情歌)로, 교과서는 물론, 수능에도 자주 등장하는 고전시가이다. 숙종 39년(1713)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엮은 <악학습령(樂學拾零)>, 영조 4년(1728) 김천택(金天澤, 1680~?)이 엮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三更인제

    일지 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야 잠못드러하노라

     

     

    다정가는 비슷한 시기의 자료에 함께 등장하므로 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유행가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다정가가 정말 이조년의 작품인지, 고려부터 어떻게 전승되어 왔는지, 한글이 없었을 때는 어떤 형식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누군가가 연구 과정에서 언급해두었겠지만 이조년만 다룬 논문은 없을테고 전공 분야가 아니라 논문의 질을 판단할 수 없으니, 무척 궁금하지만 여기서 더 찾아보는 것은 시간관계상 무리였다.

     

     

    화약

     

    공민왕이 잔치를 열면서 폭죽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려가 화약을 자체 생산하면서 실제 전투에 사용한 것은 공민왕 다음 우왕 때의 일이다. 최무선(崔茂宣, 1325~1395)이 화약을 제작하기 전까지 당시 고려에 존재하는 화약은 모두 수입품이었다. 그러므로 이때 화약은 굉장한 사치품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중에 자체 생산이 가능해진 뒤에도 화약은 귀중한 가루였지만 말이다. 제작진이 화약의 자체 생산 연도를 고려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민왕의 사치를 보여주는 연출로 아주 적절했다.

     

     

    공민왕이 정말 사치스러웠는지는 이인임이 정말 지독한 간신이었는지 등과 함께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루려고 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결국 조선의 시각에서 정리된 기록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화면에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조선의 시각에서 이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백성은 죽어나가는데 폭죽놀이를 한다고?" 아연실색하는 정도전

     

     

    명 사신

     

    이때 명에서 온 사신은 예부주사(禮部主事) 임밀(林密)과 자목대사(孶牧大使) 채빈(蔡斌)이었다. 드라마에 잘 묘사되었듯 이들은 명 태조의 명으로 고려에 말 조공을 요구하러 왔다. 명 사신이니 현대 중국어이기는 해도 당연히 중국어를 쓰는 장면이 좋았다. 이 당연한 연출을 가끔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이들은 공자를 모시는 문묘(文廟)에 갔다가 정도전을 만나게 되고, 정도전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신들을 호통치다가 공민왕과 처음으로 만난다.

     

     

    명 사신들이 문묘에 간 것은 <고려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1372년 4월 무신일(13일) 고려에 도착하여 약 열흘 뒤인 기미일(24일)에 문묘에 갔다. 이때 정도전이 성균관에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공민왕 때 정도전이 성균관에서 일하면서 각종 제사의 실무를 담당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것과 연결지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현안이었던 명 사신의 요구와 주인공 정도전을 연결시키기 위한 설정으로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다. 아쉬운 것은 명 사신을 너무 다짜고짜 '악마화'했다는 것이다. 사신으로 파견된 예부주사 정도면 원이나 명에서 과거에 급제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사신으로 와서도 문묘에 갈 정도로 유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리 다른 나라 문묘라도 그곳에서 오만방자하게 행동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명 사신의 요구 내용으로 볼 때 문묘말고 다른 곳에서는 굉장히 오만방자했을 것이므로, 차라리 정도전의 제사 관련 관력(官歷)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다른 곳에서 명 사신과 접점을 만드는 것이 조금 더 개연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더군다나 이 명 사신의 요구는 나중에 등장하는 사건들과 연결되고 정도전은 그때마다 의견을 내놓고 행동을 하는데, 이 명 사신과 정도전의 만남이 공민왕과 만나기 위한 장면으로 소모되어 버리고 다른 사건들과 연결되지 않는 것은 아쉽다. 개연성이 아예 없는 연출은 아니지만, 조금 더 개연성 있게, 전체적으로 더 짜임새 있게 연출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명 사신으로 온 임밀과 채빈

    부제

    각 화에 부제가 없는 것은 아쉽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주 한 번도 본방을 놓치지 않고 쫓아가는 시청자는 상관없겠지만, 재방송을 이용하거나 나중에 찾아보는 시청자의 경우 부제가 없으면 매번 흐름을 다시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본방을 사수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시청 환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애초에 딱히 부제를 달 수 있을 정도로 각 화를 편집하지도 못한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가 사전 제작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각 화가 짜임새있게 구성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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