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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값비싼 은 조각을 보지 못하였소?" 세종대 은 조각 사기 사건
    하루실록 2020. 7. 1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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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Steve Johnson on Unsplash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인터넷 공간의 밈(meme)이 있듯,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그 욕심을 이용한 사기가 항상 존재했다. <세종실록> 세종 8년(1426) 4월 경오일(7일) 기사에는 사노비 박막동(朴莫同), 악공(樂工) 최대평(崔大平), 일반 백성 김유(金宥), 이 세 명이 짜 놓았던 기가 막힌 사기 범죄 내용이 실려 있다.

     

     

    먼저 납으로 금속 조각을 하나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길 한가운데 버려둔다. 지나가던 사람들 대부분은 떨어진 금속 조각을 당연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얼른 자기 짐바리에 넣는다. 언뜻 큰 범죄처럼 상상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 보면 마치 5만 원 지폐 하나를 아무도 없는 길에서 발견하고 손에 넣은 일과 비슷할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 여기서는 A라고 하자. 오늘은 참으로 운이 좋다고 생각한 A가 납 조각을 가지고 간 것이 확인되면, 박막동 일행 가운데 한 명인 B가 A를 다급하게 부르며 쫓아간다. 그리고 B는 A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값비싼 은 조각을 이 길에서 잃어버렸는데, 혹시 당신이 그 조각을 주워서 제게 돌려준다면 사례를 하겠습니다.”

     

     

    여기서 A는 B의 말을 모른 척하고 자기가 은 조각(사실은 납 조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당시 피해자가 꽤 많았던 것을 보면 이렇게 반응한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사기꾼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라도 진짜 은 조각이 아니라 납 조각을 잃는 것뿐이었고, 오히려 A를 도둑으로 몰아세울 수도 있어서 A가 납 조각을 가져가려고 해도 큰 손해는 아니었다.

     

     

    우리의 선량한 조상님들, 수많은 A들은 자기가 주운 것이 눈앞에 있는 B의 물건이라는 사실이 떨떠름하기도 하고 또 사례를 받으면 자기는 손해를 볼 것이 없기 때문에, B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납 조각을 보여 준다. 그럼 다시 B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저한테 사례할 수 있는 물건이 없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A는,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거짓말을 한 B가 밉고 또 괜히 자기 이익을 빼앗긴 기분이 들어서 B와 옥신각신하게 된다. 이때 박막동 일행 가운데 하나인 C가 길을 지나가던 사람처럼 등장한다. C는 A와 B의 이야기를 듣고 중재하는 척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B는 이미 은 조각을 잃어버렸으니, 은 조각의 소유권은 사실상 A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가 호의로 B에게 은 조각을 돌려주려고 했고 그 대신 B가 A에게 합당한 사례를 하기로 했는데, B가 이제 와서 사례를 못하겠다고 하니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B가 당장 사례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도 맞으니, 차라리 A가 은 조각을 시세보다 아주 싼 값에 구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B는 잃었던 물건의 일부를 되찾고 A에게 사례도 하는 셈이고, A는 아무 손해 없이 오늘 계속 운이 좋은 채로 하루를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 빗대어 생각해보면, 길에서 500만 원짜리 수표를 주운 사람에게 원래 주인이 찾아와서 사례금 50만 원을 현금으로 줄테니 500만 원짜리 수표를 확인해달라고 한다. 수표를 주운 사람은 50만 원을 받기 위해 수표를 내놓는데, 막상 원래 주인은 생각해보니 현금이 없다며 50만 원을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이 참견하여 그렇다면 수표를 주운 사람이 500만 원 수표를 100만 원에 사가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 화폐 단위로 계산해봐도 말이 안되는 소리지만, 이 말을 듣고 있던 B가 C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A는 흔들리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A는 손해 볼 것이 없는데,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B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견물생심이라고, A는 이미 자기가 직접 손으로 들어 올렸던 은 조각을 가질 욕심에 눈이 먼 상태다. 원래 자기 것은 아니었지만 온전히 자기 것일 뻔했기에 더욱 욕심이 난다. 결국 A는 은 조각의 진위를 파악하지도 않은 채, 자기 의복이나 다른 물건을 주고 이 납 조각을 교환하고 만다. 사기가 통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박막동 등 사기꾼들은 납 조각 하나와 말솜씨로 백주대낮에 강도짓이나 다름없는 범죄 행각을 벌였다. 이 사기는 악공인 최대평이 연루된 것으로 볼 때, 한성, 지금의 서울 근처에서 벌어진 범죄였던 것으로 보인다. 악공은 음악을 담당하는 관서인 장악원(掌樂院)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대평이 악공인 이상 한성을 멀리 벗어나 범죄를 저지르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의금부가 수사에 나선 것으로 볼 때 이 사기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피해자를 많이 만들어낸 것 같다. 왕이 머무는 한성 근처에서 대놓고 사기가 벌어졌으니 그 충격도 더욱 컸던 듯하다. 아마도 피해자들 대부분은 당시 은이 귀했던 만큼, 비상금처럼 납 조각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써먹으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피해자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게 되므로 피해자 수도 그만큼 늘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박막동, 최대평, 김유는 결국 의금부에 덜미가 잡혔고, 범죄를 주도한 박막동은 곤장 100대를 맞고 수군에 끌려 갔으며 재산이 몰수되었다. 공범인 최대평과 김유도 각각 곤장을 맞았다. 사실 수많은 A에게는 사례를 포기하고 납 조각을 돌려주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 A는 당연히 이미 손에 쥐어본 이익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은 조각은 원래 자기 것이 아니었지만 거의 자기 것이 될뻔한 것이었다. 사기꾼들은 바로 이 작고 순간적인 욕심을 이용해서 A가 스스로 바보짓을 하게 했다(눈뜨고 코 베어가는 한양 놈들). 오늘날에도 사기꾼들의 수법은 갈수록 정교해지지만, 사람 욕심을 이용하는 방식은 거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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