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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수도 이전과 <경국대전> 이야기_1
    조선 사용 보고서 2022. 7. 1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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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지도에서 가져온 세종시 주변 지도

     

    <경국대전>은 조선시대 핵심 법전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금은 당연히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사료일 뿐이다. 역사학과 관련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경국대전>이라는 낱말조차 생소할 수 있다. <경국대전>은 조선시대를 전공하는 나에게는 어떤 텍스트보다 중요한 텍스트이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 영향력이 큰 텍스트는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이 <경국대전>이 한국에서 단 한 번 중요한 텍스트인 적이 있었다. 바로 2002년 행정수도 이전 논의였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이미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미 서울 인구의 과밀화는 사회 문제가 가운데 하나였다. 박정희 정부는 수도 기능을 나누고 옮겨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박정희 정부 이후에도 관련 논의는 이어졌지만, 행정수도 이전이 구체적으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차 인구를 비롯하여 각종 사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마침내 2002년 9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공약의 필요성과 실현가능성을 두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격론이 이어졌다. 결국 알다시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어 2003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핵심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 혹은 건설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2003년 12월 행정수도 이전의 법적 근거가 되는 신행정수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바로 위에서 말한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었다.   행정기관이 주도하고 입법기관이 결정한 내용을 사법기관에서 뒤집은 것이었다.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국가에서 가능한 일이었고, 이에 따라 신행정수도특별법은 내용 그대로 시행될 수 없었다. 다음은 그 판결문 내용이다.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확인(전원재판부 2004헌마554, 2004. 10. 21.)

    수도의 이전을 확정함과 아울러 그 이전 절차를 정하는 이 사건 법률은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사항을 헌법개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그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헌법개정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헌법에 위배된다. 

     

    말이 어렵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우리나라 수도는 서울이라는 내용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오랫동안 우리나라 수도는 서울이라는 것이 관습적으로 널리 인정되어 왔다는 말이다. 따라서 행정수도를 건설해서 수도를 옮기려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만들어 입법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위 법인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가 필요하므로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안이 국민의 헌법개정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었다. 이는 이른바 '관습헌법', 헌법에 직접 써있지 않으나 헌법적인 지위가 있는 법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판결의 근거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1)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조선시대 이래 600여 년 동안 당연한 규범적 사실이다(계속성).

    2)이러한 관행이 중간에 깨진 적은 없다(항상성).

    3)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에 국민 개인적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없다(명료성).

    4)이 사실은 오랜 세월 굳어져 실효성과 강제성을 지닌다(국민적 합의).

     

    이에 따라 서울이 수도라는 내용은 제정헌법 이전부터 존재한 헌법적 관습, 관습헌법, 불문헌법에 해당한다는 해석이었다. 이때 판결로 대통령, 국회 등 주요 기관들을 옮기는 행정수도 건설은 좌절되었고, 그 대신 신행정수도특별법 대신에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ㆍ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법률 7391, 2005.3.18., 제정)이 만들어졌다. 애초에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법률 7062, 2004.1.16., 제정)을 보면, 정치 및 행정의 중추가 되는 기관들을 모두 옮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제정된 법안의 내용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행정수도'라는 용어 대신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대통령을 비롯하여 통일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등은 이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헌법재판소 판결로 행정수도를 이전 혹은 건설하겠다는 공약은 그야말로 누더기가 되었다. 현재 세종시로 많은 정부기관이 이전하였지만 행정수도 이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국회 등은 이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당시 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관습헌법이 중요한 근거로 이용될 수 있는지, 헌법재판소의 판결 근거가 설득력이 있는지 등이 쟁점이었다. 판결에 논란이 일어난 만큼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기보다 판결에 이용된 조선시대 사료, <경국대전>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내세운 근거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생소했던, 혹은 신선했던 것이 다음과 같이 <경국대전>을 인용한 부분이었다.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확인(전원재판부 2004헌마554, 2004. 10. 21.)

     

    (3)수도 서울의 관습헌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
    (바)이러한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성종때에 완성된 조선의 기본법전이었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성부(漢城府)에 관한 규정은 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 한성부조(漢城府條)에 들어있는데 경관직은 지방관인 외관직(外官職)과 구별되어 있었고, 그 관할로 경도(京都), 즉 서울의 호적대장, 시장 등의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하여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하였다.

     

    2004년 한국에서 어떠한 법안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600년 전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을 근거로 이용한다는 사실은 법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낯설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연구자 입장에서 볼 때, 판결문은 의외로 자세하다. 당시 <경국대전>은 법제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이미 역주를 진행한 상태였다.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판결문에 의외로 자세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라 추정된다.

     

    이 판결문과 그 의미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조금 벗어나서, 헌법재판소가 <경국대전>의 내용을 판결 근거로 이용한 것이 적절하였는지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이어서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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