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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뿌리와이파리, 2015
    후기(後記)/독서후기 2020. 4.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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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죄 판결 소식을 듣고, 늦었지만 직접 읽어보고 쓴 후기이다. 판본은 34곳이 삭제된 제2판이었다.

     

     

    이 책은 위안부에 대한 책이 아니라, 위안부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고 보아야 불필요한 오해가 적을 듯하다(그래서 제목이 적절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목적은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사실상 주도해왔던 한국의 '정대협'과 일본의 '진보좌파세력'의 운동 방식을 비판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운동 방식의 문제는 위안부에 대한 이미지를 '피해자', '소녀', '투사'로만 한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정대협'과 '진보좌파세력'이 복잡 했던 위안부의 모습들을 단일한 이미지로만 정리함으로써 여러 논의점들을 탈락시켜왔을 뿐만 아니라 일부 사실 관계도 왜곡하여 한일 양국 사이의 대화와 화해를 방해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 ‘피해’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발생했고 누가 ‘가해’했는가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가 조선 소녀들을 강제연행해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든 사건’에 국한시키지 않고, 근대 국가, 제국주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의 소재로 확대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현재 일본의 주장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에게는 ‘소녀’나 ‘투사’의 모습뿐만 아니라 여러 증언들에서 확인되는, '식민지인’, ‘이등국민’, ‘동지’, ‘군수품’으로서의 모습도 중요하다.

     

     

    때때로 위와 같은 시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이 책이 논란이 된 것도 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저자의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문장들은 적지 않다(삭제된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문맥으로 볼 때 더 ‘노골적인’ 문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저자의 주된 서술 방식 중 하나는 결론을 담은 문장 다음에 바로 ‘그러나’와 같은 역접을 써서, 해당 결론의 조건을 함께 언급해주는 것이다. 물론 조심스러운 서술을 위한 것이겠지만, 이 서술 방식이 오히려 문장 혹은 문단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면서 의심을 더욱 짙어지게 한다. 그러나 이처럼 저자가 깔아놓은 여러 오독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책의 구성과 내용에서 볼 때, 이 책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가해자인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로 작성되었다는 혐의는 지나치다. 위안부의 기존 이미지가 흔들리더라도 피해자로서의 지위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저자 스스로 수차례 강조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위안부의 이미지를 한국 혹은 일본 사회의 욕망에 따라 결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조명해보자는 저자의 문제제기는 의도가 어떻든 그 자체로 유효한 지적이기 때문이다.

     

     

    ‘소녀’가 아닌 위안부의 다른 모습을 조명해보자는 저자의 문제제기를 바로 가해자의 물타기, 혹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만 연결해버리지 않는다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외연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역사 인식이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선량한 피해자’로 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를 향한 끝없는 동경을 드러내는데 익숙한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의의가 적지 않다. 게다가 지금 이 책이 재판정까지 가는 과정은, 오히려 이 책의 문제제기가 왜 필요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처럼 저자의 문제제기는 동의하지만, 저자가 문제제기를 위해 시도한 분석과 이어서 내놓은 대안들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다. 저자의 분석 작업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1)여러 증언들을 인용하여 위안부의 이미지를 하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을 밝힌 부분과, 2)식민지 이후 한일 사이의 협상 과정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입장 및 해석을 정리한 부분이다. 이 1)과 2)는 저자의 문제제기를 뒷받침하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2)의 경우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일본의 정리된 입장과 해석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야기나 대안의 제시를 위해서는 더 구체적이고 정밀한 분석이 필요했다. 1)은 다른 이해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일 뿐 저자가 말하는 총체적인 위안부의 모습을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안을 제시하려다 보니 저자가 처음에 제시했던 근대 국가, 제국주의, 젠더 문제 등이 고려된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 등과 같이 새삼스럽고 모호한 형태의 대안 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책이 가장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저자가 다루려고 했던 내용을 모두 다루기에 저자의 역량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인지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책을 이끌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딱히 설득력있는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는 기존의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까지 이루어지다 보니, 이 책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저자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더 이상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법적 책임’의 범주 안에서의 요구는 타당하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이 모두 1)의 잘못된 이해, 다시 말해, 기존 운동 세력의 욕망과 고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서술 방향은 동의하기 어렵다. 왜 기존 운동 세력이 ‘법적 책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보다 넓고 다양한 접근이 필요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일 양국이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다룰 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해왔던 과정을 고려해보면,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운동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 운동 세력, 특히 ‘정대협’과 한국의 이른바 '진보세력'에게 적대감에 가까운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다른 변수와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2015년의 당시는 물론, 현재 상황에서 볼 때도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책이다. 다만 이 책이 뜬금없이 재판정까지 가는 바람에, 보다 정밀하고 성실하게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이 책에서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다는 점은 정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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