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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미안, <무리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걸>, SALIDA, 2020
    후기(後記)/독서후기 2020. 12. 31.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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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돈내산, 책.

     

     

    다미안이란 글쓴이는 총 세 권의 책을 냈다. 호기심에 첫 번째 책을 본 뒤, 그 책을 하나 더 사서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했다. 곧 나온 두 번째 책은 출간되자마자 찾아서 읽었다. 이번 세 번째 책은 아예 나오기를 기다려서, 처음 들어보는 행사 웹사이트의 예약 구매 비슷한 것을 했다. 이제 팬이라면 팬일 수 있겠다 싶다. 나머지 책들도 거꾸로 하나씩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논문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 문장이 한없이 무거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 글을 봐도 그렇게 가벼웠던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걸 좀 어떻게 해보려고 이 블로그도 하는 것이지만 딱히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마운드에 섰을 때 온통 힘이 들어가서 발아래 로진백조차 제대로 털어낼 수 없을 것 같은 투수의 모습. 지금 내 글을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 글쓴이의 글을 보면, 유연한 자세로 좋은 공을 뿌리는 투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저렇게 던져야 되는데'만 되뇌다가 연신 무거운 문장들을 쏟아내고 만다. '어떻게 저렇게 던지지?' 자문하다가 또 문장을 쏟아내다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 투수의 등판을 계속 챙겨보게 되었다. 보다 보면 나도 저렇게 던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도 어렴풋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글쓴이가 지금 가지고 있거나, 예전에 가지고 있었거나, 가지진 못했지만 사용했던 물건들에 얽힌 이야기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같은 2개 장을 제외하면 딱 20개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엄마, 나는 신형이야>에서는 어린 시절 세수하고 있는 글쓴이의 모습이 상상돼 코끝이 찡했고, <먼지는 220볼트가 아니라서>에서는 글쓴이와 함께 분노했고, <뭉치면 산다던데>와 <가지진 못해도 빌릴 순 있으니까>에서는 나의 '쓰임새'가 어떨까 생각해보았고, <잠자리 날아다니다>와 <복숭아론 이길 수 없어>에서는 마음이 따듯해졌다. 물건에서 시작된 생각은 흥미로웠고, 물건과 연결된 삶의 태도는 시간을 들여 고민해볼 만했고, 물건에 켜켜이 쌓인 기억은 특이했고, 물건을 이용한 유머는 때때로 싱거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내 주변의 물건들을 새삼스레 돌아보면서 글쓴이와 비슷한 사고 작업을 하게 된다. "누구의 집에나 있을 법한 흔해빠진 물건들에 대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남들 읽어보라고 쓰는 일(164쪽)"은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오랜 생각과 기억을 남들 읽어보라고 그보다 더 오래 고민해서 문장으로 내놓았을텐데 이처럼 가볍고 쉽게 읽히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나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개인주의자고, 방해받고 침해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문제에 대하여는 널리 잘 들리는 큰 소리를 내고 싶어서, 하지만 누구도 찌르거나 부수고 싶지는 않아서, 생각하고 궁리하다가 가끔 글을 쓴다. 귀 꽁꽁 막고 혼자서(135쪽)."

     

     

    다음 책도 이렇게 쓰다가 슬쩍 내놓아주길 바란다.

     

     

    "우리는 앞서 산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경험하고 훨씬 많이 가졌지만, 세상의 가능성이 그보다 훨씬 더 커진 만큼 그들보다 큰 상실감과 싸우며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딱히 열심히 싸운 것도 아니지만, 후반전 들어가기 전에 악수라도 한번 해두자는 마음으로 글들을 내놓는다. 당신의 싸움도 조금 덜 고단하기를(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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