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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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대 김중량(金仲良) 독살 사건하루실록 2020. 5. 5. 17:27
조선 중종 32년(1537) 어느 날 김중량(金仲良)이라는 사람이 죽었다. 김중량의 아들이었던 김빈(金斌)은 아버지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아버지의 첩인 내은장(內隱藏)과 그녀의 사위 정형근(鄭亨根)을 고발했다. 그러니까 정형근은 김빈에게 매부(妹夫)가 된다. 이 사건은 김빈의 말대로라면 첩이 남편을, 혹은 사위가 장인을 독살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 윤리를 심각하게 해치는, 강상(綱常)과 관련된 사건이었으므로 왕에게 보고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에 가족 사이의 살인사건이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이 사건을 접수한 사헌부는 김빈이 고발한 내은장, 정형근뿐만 아니라, 김중량의 아내인 철비(哲非)와 딸 두리덕(豆里德)은 물론, 고발자인 김빈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한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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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동요(童謠)라고 할 수 없다" 조선 태종대 동요 소동 사건하루실록 2020. 5. 3. 23:35
조선 태종 13년(1413) 혜정교(惠政橋))에서 열 살짜리 아이들이 놀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당시 사법기관인 형조(刑曹)에 잡혀왔다. 혜정교는 당시 한성 서린방(瑞麟坊) 북쪽에 있었던 다리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서울 경복궁의 정남쪽에 있었던 것 같다. 에서는 혜정교를 현재 종로 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으로 위치를 비정하고 있다. 대체 이 혜정교에서 무슨 노래를 불렀길래 열 살짜리 아이들이 감옥으로 끌려왔을까. 곽금(郭金), 막금(莫金), 막승(莫升), 덕중(德中) 등 네 명은 공 여러 개를 치는 놀이를 하면서 공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그 공은 총 네 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름은 각각 현재 왕을 뜻하는 주상(主上), 효령군(孝寧君), 충녕군(忠寧君), 반인(伴人)이었다. 공에 당대 왕과 왕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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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풍자 좀 하는 녀석인가? 정곡공신(正哭功臣) 이곤(李坤)하루실록 2020. 4. 24. 00:39
정치 기사에 바로 달라붙는 댓글이나 그와 관련한 커뮤니티 게시글들을 보면, 그 짧은 댓글에 응축된 해학과 풍자에 놀랄 때가 많다. 대체 어떤 분들이기에 이런 댓글을 쓸 수 있을까. 에는 이런 댓글을 연상케 하는 조상님들의 숨겨진 실력이 종종 드러나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를 꼽아봤다. 다음은 기사 링크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504003_002 조선 중종대 이곤(李坤, 1462~1524)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정국공신(靖國功臣)에 포함된 사람이었다. 공신이란 말 그대로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지위로, 한 번 공신이 되면 자손 대대로 보상과 명예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신은 나라의 건국, 전쟁, 정치적 격변 이후에 선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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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구호에서 시작된 조선 세조대 최팔준(崔八俊)의 별명하루실록 2020. 4. 21. 01:02
조선 세조 6년(1460) 문과에 급제한 최팔준(崔八俊,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최용(崔龍)이었는데, 이 별명은 조선의 경호(更號), 지금으로 치면 암구호에서 시작되었다. 관련 기사 링크 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07015_003 조선에서, 특히 한성에서는 밤이 되면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순관(巡官)들이 순찰을 돌면서 밤에 돌아다니는 자들을 적발해냈다. 이때 순관끼리 오인하면 안 되기 때문에 암구호를 만들어서 왕의 결재를 받아 사용했다. 어느 날 암구호가 용(龍)/호(虎)로 정해졌다. 암구호는 지금 군대의 암구호, 화랑/담배, 너구리/애국가 등과 같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동수상자(거수자, 擧動殊常者)가 나타났을 때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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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29년(1534) 남효문 폭음 사망사건하루실록 2020. 4. 19. 04:06
조선 중종대 영산 현감이었던 남효문(南孝文, ?~1534)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남효문은 중종 11년(1516)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이어서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떤 경로를 거쳐 영산 현감까지 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하 )의 파편적인 기록으로 남효문이 영산 현감 이전에 사헌부 감찰에 임명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뿐이다. 남효문의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는 곳은 뜻밖에도 왕실 족보인 이다. 여기에 남효문은 태종의 동생, 진안대군 이방우의 첫째 딸의 후손 집안의 사위로 기재되어 있다. 아주 정확하지 않지만 이 긴 수식어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남효문은 태조의 6대 외손녀 사위이다. 전주 이씨도 아니고 6대손까지 내려가면서 여러 차례 성씨가 섞였지만, 에 기재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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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에 대한 담담한 기록, 조운흘의 묘지(墓誌)하루실록 2020. 4. 18. 05:02
에는 주요 인물의 사망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을 졸기(卒記)라고 한다. 각 왕대 마다 졸기를 기록하는 대상과 졸기의 내용, 구성 등이 조금씩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나라에서 장례를 지원해줄 정도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 졸기가 남는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졸기에는 대상의 가문, 관력(官歷), 후손 등이 간략하게 기록되는데, 몇몇 인물의 경우 인물에 대한 평가와 그 인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등이 같이 기록되기도 한다. 은 편집된 책이므로 대부분의 졸기도 제3자인 사관(史官)과 편집자의 시각에서 쓰였다. 그런데 특이하게 졸기의 대상 스스로 쓴 글이 포함된 졸기가 있다. 바로 태종대 조운흘(趙云仡, 1332~1404)의 졸기이다. 조운흘의 졸기에는 자신이 직접 쓴 묘지(墓誌)가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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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다 있는 고양이, 묘수좌(猫首座)하루실록 2020. 4. 16. 10:26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조선시대에도 정치는 아주 훌륭한 해학과 풍자의 소재였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정치 양상을 보고 노래, 이야기, 소문 등을 만들어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번에 살펴볼 권77, 29년 7월 정해(22일) 기사에도 고양이와 관련된 우화가 남아 있다.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907022_004) 당시 제주 목사로 임명되었던 송인수(宋麟壽, 1499~1547)는 제주도에 부임했다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이에 대해 조정에서는 논의 끝에 송인수가 멀리 제주도까지 가서 생활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꾀병을 부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송인수는 경상도 사천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물론 송인수에게 왕의 명령을 소홀히 했다는 죄를 물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