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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풍자 좀 하는 녀석인가? 정곡공신(正哭功臣) 이곤(李坤)하루실록 2020. 4. 24. 00:39
정치 기사에 바로 달라붙는 댓글이나 그와 관련한 커뮤니티 게시글들을 보면, 그 짧은 댓글에 응축된 해학과 풍자에 놀랄 때가 많다. 대체 어떤 분들이기에 이런 댓글을 쓸 수 있을까. 에는 이런 댓글을 연상케 하는 조상님들의 숨겨진 실력이 종종 드러나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를 꼽아봤다. 다음은 기사 링크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504003_002 조선 중종대 이곤(李坤, 1462~1524)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정국공신(靖國功臣)에 포함된 사람이었다. 공신이란 말 그대로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지위로, 한 번 공신이 되면 자손 대대로 보상과 명예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신은 나라의 건국, 전쟁, 정치적 격변 이후에 선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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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 놓은 당상, 따 놓은 당상, 종합적으로 이해해보기조선 사용 보고서 2020. 4. 22. 01:54
"떼어 놓은 당상" 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속담을 많이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떼어 놓은 당상"은 "따 놓은 당상"으로도 쓰며 "떼어 놓은 당상이 변하거나 다른 데로 갈 리 없다는 데서,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떼어 놓은 당상 좀먹으랴", "받아 놓은 당상"이 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떼어 놓은 당상"과 "따 놓은 당상"을 모두 쓸 수 있다고 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둘의 어감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떼다: 붙어 있거나 잇닿은 것을 떨어지게 하다. 따다: 붙어 있는 것을 잡아떼다. 사전적 의미는 거의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따다"가 "떼다"보다 적극적인 어감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번과 같이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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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구호에서 시작된 조선 세조대 최팔준(崔八俊)의 별명하루실록 2020. 4. 21. 01:02
조선 세조 6년(1460) 문과에 급제한 최팔준(崔八俊,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최용(崔龍)이었는데, 이 별명은 조선의 경호(更號), 지금으로 치면 암구호에서 시작되었다. 관련 기사 링크 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07015_003 조선에서, 특히 한성에서는 밤이 되면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순관(巡官)들이 순찰을 돌면서 밤에 돌아다니는 자들을 적발해냈다. 이때 순관끼리 오인하면 안 되기 때문에 암구호를 만들어서 왕의 결재를 받아 사용했다. 어느 날 암구호가 용(龍)/호(虎)로 정해졌다. 암구호는 지금 군대의 암구호, 화랑/담배, 너구리/애국가 등과 같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동수상자(거수자, 擧動殊常者)가 나타났을 때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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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고약해의 어원(2)조선 사용 보고서 2020. 4. 20. 01:34
고약한 고약해의 어원(1) 고약해 어느 날부터 갑자기 "고약하다"는 우리말이 조선시대 인물 고약해(高若海, 1377~1443)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온라인에 떠돌기 시작했다. 글자 형태를 보면 꽤 그럴듯하다. 고약해. 고약�� leesearches.tistory.com 위 링크로 제시한 첫 번째 글에서 고약해라는 사람을 고약하다, 고약해의 어원이라고 믿기 어려운 이유를 제시했다. 앞으로 추적할 내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약해가 세종에게 극찬을 들을 정도로 소신 있고 탁견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약해가 당대 특별한 인물도 아니고 고약하다의 어원도 아니라면, 도대체 왜 그렇게 띄워주게 되었을까, 그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두 번째 글에서는 이 가운데 전자, 고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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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29년(1534) 남효문 폭음 사망사건하루실록 2020. 4. 19. 04:06
조선 중종대 영산 현감이었던 남효문(南孝文, ?~1534)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남효문은 중종 11년(1516)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이어서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떤 경로를 거쳐 영산 현감까지 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하 )의 파편적인 기록으로 남효문이 영산 현감 이전에 사헌부 감찰에 임명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뿐이다. 남효문의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는 곳은 뜻밖에도 왕실 족보인 이다. 여기에 남효문은 태종의 동생, 진안대군 이방우의 첫째 딸의 후손 집안의 사위로 기재되어 있다. 아주 정확하지 않지만 이 긴 수식어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남효문은 태조의 6대 외손녀 사위이다. 전주 이씨도 아니고 6대손까지 내려가면서 여러 차례 성씨가 섞였지만, 에 기재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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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에 대한 담담한 기록, 조운흘의 묘지(墓誌)하루실록 2020. 4. 18. 05:02
에는 주요 인물의 사망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을 졸기(卒記)라고 한다. 각 왕대 마다 졸기를 기록하는 대상과 졸기의 내용, 구성 등이 조금씩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나라에서 장례를 지원해줄 정도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 졸기가 남는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졸기에는 대상의 가문, 관력(官歷), 후손 등이 간략하게 기록되는데, 몇몇 인물의 경우 인물에 대한 평가와 그 인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등이 같이 기록되기도 한다. 은 편집된 책이므로 대부분의 졸기도 제3자인 사관(史官)과 편집자의 시각에서 쓰였다. 그런데 특이하게 졸기의 대상 스스로 쓴 글이 포함된 졸기가 있다. 바로 태종대 조운흘(趙云仡, 1332~1404)의 졸기이다. 조운흘의 졸기에는 자신이 직접 쓴 묘지(墓誌)가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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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이육사 시집(범우문고312)>, 범우사, 2019후기(後記)/독서후기 2020. 4. 17. 12:50
2019년 12월 30일 친구들과 연말모임에서 이육사의 시 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육사의 은 다음과 같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문제가 된 것은 3연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의 의미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었다. 하나는 ‘한 발을 힘있게 밟을 곳조차 없다(K씨)’이고, 다른 하나는 ‘한 발을 둘 공간조차 없다(L씨, 아래 실명은 연구자 이름)’는 것이다. 전자는 경북 영주의 방언을 근거로 한 해석이었고, 후자는 현재 일반적인 해석을 따른 것이었다.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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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다 있는 고양이, 묘수좌(猫首座)하루실록 2020. 4. 16. 10:26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조선시대에도 정치는 아주 훌륭한 해학과 풍자의 소재였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정치 양상을 보고 노래, 이야기, 소문 등을 만들어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번에 살펴볼 권77, 29년 7월 정해(22일) 기사에도 고양이와 관련된 우화가 남아 있다.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907022_004) 당시 제주 목사로 임명되었던 송인수(宋麟壽, 1499~1547)는 제주도에 부임했다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이에 대해 조정에서는 논의 끝에 송인수가 멀리 제주도까지 가서 생활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꾀병을 부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송인수는 경상도 사천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물론 송인수에게 왕의 명령을 소홀히 했다는 죄를 물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