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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 씨가 어찌 천지와 함께 무궁하겠는가하루실록 2020. 5. 23. 00:09
태종 12년(1412) 5월 경자(17일) 서견(徐甄, ?~?)이라는 사람의 시가 조정에서 논란거리가 되었다. 서견이 지었다는 시는 다음과 같다. 천 년의 새 도읍이 한강 사이에 있는데(千載新都隔漢江) 충성스러운 자들이 많이 모여 밝은 왕을 돕네(忠良濟濟佐明王) 삼한을 하나로 통일한 공은 어디에 있는가(統三爲一功安在) 아, 고려의 업이 길지 않은 것이 한스럽네(却恨前朝業不長) 한강에 있는 새 도읍은 지금의 서울인 한성을 의미하며, 전조(前朝)는 고려를 의미한다. 서견은 1행과 2행에서 조선의 개국을 축하하고, 3, 4행에서는 고려의 멸망을 기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는 아직 고려가 멸망한 지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던 데다가 서견은 고려에서 관직도 했던 사람이었으니 충분히 쓸 법한 시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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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또는 도둑놈이오!" 산꼭대기에 올라 욕을 퍼부은 사람들하루실록 2020. 5. 22. 02:21
사극이나 역사 관련 콘텐츠를 보면, 일반 백성들은 탐관오리에게 마냥 당하기만 하는, 힘없고 약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일쑤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백성들은 무기력하게 ‘피통치자’에 머물지 않고 나름대로 방법을 고안해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주장을 내세웠다. 서울(한성, 漢城)이 아닌 지방에서 사람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관원은 수령(守令)이었다. 흔히 “사또”라고 불리는 이들은, 왕을 대신해서 지방을 다스리는 역할을 맡았다. 시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령은 조선 전체에 약 330여 개 자리가 있었다. 북한 지역을 포함해서 지금 알고 있는 모든 도시에 수령이 한 명씩 다 파견되어 있었다고 보면 된다. 수령의 가장 큰 업무는 세금 징수와 재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 당시에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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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와 신숙주의 팔씨름 이야기 출처는?조선 사용 보고서 2020. 5. 18. 18:59
세조(李瑈, 1417~1468, 재위 1455~1468), 신숙주(申叔舟, 1417~1475), 한명회(韓明澮, 1415~1487)의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팔씨름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왕이 된 세조, 신숙주, 한명회 등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세조와 신숙주가 팔씨름을 하게 되었다. 신숙주는 취한 나머지 세조의 팔을 크게 꺾고 말았는데, 세조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불쾌했다. 이것을 눈치챈 한명회는 신숙주에게 오늘만큼은 책을 읽지 말고 그대로 자라고 했다. 신숙주는 아무리 취하더라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숙주는 한명회 말에 따라 잠을 잤다. 과연 세조는 내관(內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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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독일 뮌헨 다하우 강제수용소 방문기(2)후기(後記)/여행후기 2020. 5. 14. 19:34
저번 2010년 독일 뮌헨 다하우 수용소 방문기(1)에 이은 두 번째 글이다. 첫 번째 글부터 보려면 이 링크를 이용하면 된다. 1편에서 봤던 바로 위 미술품을 보다가 뒤돌면, 바로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나무 아래 남아 있는 건물이 수감자들을 수용한 생활관이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사진처럼 터만 남아 있다. 당시 모습을 재현해둔 생활관 2개 동만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관람객들은 주로 성인과 학생들인데, 태도가 각양각색이기는 했지만 튀는 행동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명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시종일관 진지했다. 설명하는 내용이 무거워서 그랬을 테지만, 생활관들이 대부분 철거되어 오히려 강제수용소 규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분위기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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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독일 뮌헨 다하우 강제수용소 방문기(1)후기(後記)/여행후기 2020. 5. 12. 01:54
코로나19가 등장한 이후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옛 자료를 보다보니 2010년에 독일 뮌헨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때 뮌헨에 있는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갔다 와서 글과 사진을 이글루스였나 어디였나 정리해두었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여기 블로그에 다시 정리해보려고 한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듯이, 독일 국내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건축물 구성과 운영 방식 등은 뒤에 만들어진 다른 강제수용소들의 원형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하우 수용소에 간 날은 독일 현지 시각으로 2010년 7월 7일이었다. 뮌헨 중앙역 주변 숙소에서 주선하는 가이드 투어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가이드 투어에 신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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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좌(猫首座) 보론(補論)하루실록 2020. 5. 11. 19:49
이전 글, 에서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당시 사관(史官)은 김안로를 고양이에 비유하여 마치 역사 속 이묘(李猫)의 사례와 같다고 말했는데, 이 이묘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이전 글을 쓸 때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추정했던 후보로는, 1)당 고종대 재상 이의부, 2)당 현종대 재상 이임보, 3)고려 우왕대 재상 이인임이었다. 모두 이 씨인 간신들로 고양이로 비유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묘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묘수좌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딱히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 알게 되었으니 보충하는 글을 쓴다. 권79, 30년 1월 정축일(16일)의 기사를 보면, 여기서도 사관이 당시 김안로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김안로의 간사함이 2)이임보보다 더 심하다고 말하고 있다(아래 번역 이외에 괄호 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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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놀 순 있어도, 권력은 함께 할 수 없다.하루실록 2020. 5. 10. 00:12
조선 태종 이방원(李芳遠,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왕위에 오른 뒤에도 사람을 많이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태종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연이어 제작되면서, '킬(Kill)방원'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만큼 태종은 권력에 대단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태종은 왕위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처럼 앞으로 왕의 권력에 문제가 될 것 같은 사람도 미리 처단했다. 권력 앞에서는 피붙이도 없었다. 태종에게 죽은 사람 가운데 민무질(閔無疾, ~1410), 민무구(閔無咎, ?~1410) 형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태종의 아내, 원경왕후(元敬王后, 1365~1420)의 동생들이었다. 태종에게는 처가 식구들이었다. 태종 10년(1410) 민무질과 민무구는 어린 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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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을 추억하며쓸데없는 생각들 2020. 5. 9. 00:10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당신이 20세기 말에 생겨나 2000년대 전성기를 누린 [책마을]이라는 커뮤니티를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은 분명 아재다.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커뮤니티는 한국 육군 인트라넷 구석에 만들어진 사이트이기 때문이다(이 인트라넷은 일반적인 인터넷이 아닌 군 내부 통신망이다). 육군의 공식적인 허가나 홍보는 없었던 듯한데, 책을 다루는 '건전한' 커뮤니티라는 점, 죄다 텍스트로만 이루어져 있는 사이트라 서버에 그다지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 덕분에 그럭저럭 살아남았던 것 같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인트라넷 상태에 따라 이른바 '폭파'되기 일쑤였지만, 몇몇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데이터를 백업해두어서 버텨낼 수 있었다. 1년 동안 말그대로 소대 보병으로, 육군에서 할 수 있는 훈련이..